SNS, 좋은 글귀보단 내 이야기 전할 때 정감
아침 6시 경이면 어김없이 카톡을 보내오는 친구가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장성 평림댐 장미공원에 장미가 만발했다는, 한번 가보라는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그를 대학 때 만났으니 40년지기입니다. 그는 나를「칭구」라고 부릅니다.「칭구」라는 표기가 표준어는 아닐지라도「친구」라는 말보다는 훨씬 가깝고 정감 있게 들립니다.
광주에 갈 일이 있어 전화를 하면 “칭구, 얼굴 좀 보세” 혹은 “식사하고 가소”라는 말로 따스한 마음을 담아내는 친구입니다.
그도 해남 인근에 올 일이 있으면 꼭 연락을 해옵니다. 나도 만사를 제쳐놓고 그에게 비빔밥이라도 대접해야 마음이 편합니다.
그는 사진을 좋아해서 매일 카카오톡 메신저로 사진을 보내옵니다. 가끔 짤막한 글도 곁들이고요. 이제는 그 시간이 은근히 기다려집니다.
그 친구 외에 다른 이들이 보내주는 글이나 영상의 90%는 인터넷, 유튜브, SNS 등지에 돌아다니는 이야기들입니다. 남의 이야기들은 인터넷만 열면 화수분처럼 쏟아집니다. 어떤 날은 같은 내용이 두세 곳에서 날아오기도 합니다.
내가 듣고 싶은 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마음 한 조각이라도 담겨진 본인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우리는 남의 이야기를 나르는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이제는 상대방의 감정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 보편화된 것 같습니다. 혹 배달된 내용이 꼭 알아야 할 중요사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야 ‘내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인사이겠지요.
만약 그 친구와 내가 실제로 만났을 때「좋은 글」이야기만 한다거나 「남의 이야기」나「공지사항」만 전달 한다면 만남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네 이야기와 내 이야기가 그리고 네 가슴과 내 가슴이 만나는 교차점에서 정이 생겨나고 인연이 만들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금아 피천득님은 그의 글에서 인연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반짝이는 시간을 씨줄로 하고 곱고 연한 마음을 날줄로 삼아 인생이라는 천을 짠다. 그 베짜기가 인연이다.’
금아 선생의 인연은 거미줄과 같은, 한쪽을 당기면 다른 쪽이 따라 움직이는 관계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려면 너와 내가 만나는 교차점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도 이런저런 남의 이야기들을 받았습니다. 매정하기는 하지만 저는 그런 글들은 대부분 삭제합니다. 그의 이야기가 아닌, 나와 전혀 관계가 없는 남의 이야기에는 정감이 들지 않거니와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만남에서 정이 생성되고 관계가 짙어집니다. 만남이란 너와 나의 가슴이 연결된 상태죠. 하여 저는 번거롭더라도 제 마음을 담아 보냅니다.
남의 이야기를 생각 없이 배달하는 익숙해진 버릇에 대해 한번쯤은 생각해 볼 일입니다. 때론 그것이 남에게 폐해(弊害)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적다보니 톡방을 두드린 어떤 이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아침에 소식을 보내온 칭구가 어른거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