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대 사학과, 해남의 해양문화를 탐구하다
해남은 서해의 끝단이자 남해의 시작점에 위치해 한반도 L자축의 꼭지점을 이룬다.
이러한 위치 때문에 일찍이 해남은 서해와 남해를 연결하는 우리나라 해양의 결절점이자 중국과 일본으로 통하는 동아시아 해양의 요충지로 기능했다.
더욱이 해남은 3개의 반도로 구성되어 있고, 수많은 섬들로 에워싸여 있어, 우리나라 해양성 지문화(地文化)의 백미라 할 만하다.
해남을 구성하는 3개의 반도는 해남반도, 화원반도, 산이반도이다. 먼저 역삼각형을 이루며 해남의 주류를 점하고 있는 해남반도는, 서부쪽은 진도의 다도해와 접하고, 동부쪽은 ‘달량(達梁)’이라는 좁은 해협을 경계로 완도와 대면한다.
해남반도의 서북방에는 화원반도와 산이반도가 마치 두 개의 뿔처럼 솟아나 있다.
화원반도는 북서변에서 목포 및 신안의 다도해역과 접하고, 남서변에서는 저명한 ‘명량(鳴梁)’의 좁은 해협으로 진도의 본섬과 경계를 이루며 대면한다.
산이반도는 남북으로 금호호와 영암호라는 작지 않은 두 간척호수를 거느리고 있는 형국이다.
해남군의 14개 읍면은 해남반도를 에워싸는 7개 읍면(해남읍, 삼산면, 화산면, 현산면, 송지면, 북평면, 북일면)과 화원 및 산이반도와 연결되는 7개 면(화원면, 문내면, 산이면, 황산면, 마산면, 계곡면, 옥천면)으로 나뉘어, 하나같이 바다로 통하고 있다.
그러니 해남을 우리나라 해양성 지문화의 백미라 일컫는 것은 결코 과언이 아닐 터이다.
더욱이 그 명칭이 ‘바다의 남쪽’, ‘해남(海南)’이 아닌가? 해남이라는 이름은 중국 동남해의 끝단에서 중국의 최대 섬을 이루며 중국 해양문화의 메카로 알려진 ‘하이난다오(海南島)’를 연상시키니, 해남을 일컬어 ‘한국의 하이난’이라 불러도 무방하겠다.
해남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고려시대부터였다. 해남의 전신은 백제시대에는 새금현(塞琴縣), 통일신라시대에는 침명현(浸溟縣)으로 불렸다.
새금현과 침명현은 오늘날 해남반도 남서변의 백포만 일대에 위치했고, 이곳에는 일찍이 고대 포구세력으로 이름을 떨친 신미국(新彌國)이 있었다 한다.
그러니 백포만의 신미국이 백제의 지배하에 들어가면서 새금현이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통일신라시대에는 침명현으로 개명됐으며, 고려시대에이르러 마침내 해남현으로 다시 개칭된 셈이 된다.
따라서 바다 냄새 물씬 풍기는 해남이라는 이름은 백포만의 고대 독자포구세력 신미국의 해양전통을 이어 받아 명명된 것임을 알겠다.
이후 조선시대에 이르러 해남은 세차례 중심지[치소(治所)]를 옮겼다.
먼저 1409년(태종 9)에 진도와 통합해 해진군(海珍郡)이라는 이름으로 옛 녹산역 지역(지금의 현산면 구시리 일대)으로 1차 이동하더니, 1412년(태종 12)에는 옥산지역(지금의 해남읍과 삼산면의 경계지역)으로 2차 이동했으며, 1437년(세종 19)에 이르러서는 진도와 분리돼 다시 해남이라는 이름을 회복, 지금의 해남읍 자리로 3차 이동하기에 이르렀다.
오늘날 해남의 중심지 해남읍은 바다와 다소 거리가 있지만, 해남이라는 이름의 연원이 백포만의 유서깊은 해양세력에서 유래한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해남의 뿌리는 역시 해양성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런 만큼 해남에는 역대로 다채로운 해양문화가 전개돼 왔다.
이에 목포대 사학과는 29일 해남답사를 시작으로, ‘한국의 하이난, 해남의 해양문화를 탐구하다’라는 주제의 제29회 학생심포지엄(지도교수 강봉룡) 개최 준비에 시동을 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