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의 정희에게 일흔의 친구가

2021-06-08     이경자/소설가
이경자/소설가

 

 정희야, 네 목소리를 못 듣고 얼굴도 못 보고 이리저리 일상을 느끼는 시간도 불가능해진지 30년이 지났네.
 시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사람이란 동물 존재는 한 참 겸손해야 한 다는 생각이 들어. 아마 우리가 지금 만나면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사람을 자연계로부터 극단적으로 소외시키는 기술발전이 진보인가? 서글프고도 두려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 할 것 같아.
 사실 우리의 정서는 그 뿌리가 농경사회에 있잖아. 땅과 하늘, 그 사이의 사람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삶. 서로 미워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지배하지 않고 존중하면서 교감하던 시대. 농부들은 한 해 농사를 지으려면 하늘을 바라보고, 바람의 결을 느끼고 달무리를 지켜보면서 천지(天地)의 마음을 읽었지. 가뭄이 들것 같으면 그런 조건에 맞는 농사를 짓고 장마가 질 것 같으면 농사를 그것에 맞추는 자연과의 대화가 가능하던 시대.
 왜 나는 자꾸 그런 시대가 그립지?
 네가 없는 동안 문명은 사람을 중심에 두고, 그 사람들이 소비를 통해 존재감을 느끼게 하는 구조로 자리를 잡았는데 놀랍게도 그 사이에 연결이 끊어졌단다. 사람은 많은데, 사람들이 자유로워졌는데 만나지 못해.
 만날 필요가 없도록 기술이 만들어 버렸어. 네가 있던 때는 전화와 편지로 연결됐고 원고를 주고받을 땐 만나서 줘야 했어. 지금은 인터넷을 이용해서 처리 해. 3년 동안 다달이 연재를 해도 담당자를 만나지 못해. 꼭 필요할 때 목소리로 의견을 교환할 수는 있지만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어. 그리고 일이 끝나면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그냥 순식간에 지워져. 그 지워진 자리에 공허, 허망, 속임 같은 감정이 스며. 이런 감정들은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던 고독과 두려움을 낳아. 두려움과 고독은 사람의 심성을 어떻게 만들까? 사람을 만나는 것, 사랑하는 것, 대화하는 것 등등이 모두 기술. 그걸 배우는 거야.
 네가 없는 30년의 세월동안 사람들의 생활이 이렇게 됐어. 존재를 존중하고 연결하고 사랑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는 생활들을 네가 보았다면, 얼마나 엄중하게 날카롭고, 슬픔으로 눈물이 감도는 글들을 썼을까… 생각한다.
 네가 우리 곁을 떠난 뒤, 서로 의지하고 어깨동무하고 팔짱 꼈던 ‘또문’의 벗들. 여전히 너에 대한 존중과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단다. 물론 세상이 달라져서 뭉치고 흩어지는 모습도 달라졌지만 그리움은 여전한 것 같아.
 어쩌다 ‘또문’ 동인들을 만나면 표정에 ‘고정희’가 어릿어릿 비치는 걸 느껴!
 정희야.
 그 해, 광주에서 너를 보내고 돌아온 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내 꿈속으로 오더니 추모 행사를 한 뒤로는 더이상 오지 않는구나. 천성이 소박하고 겸손한 너, 경자야, 충분해, 괜찮아, 이렇게 인사한 걸까?
 그렇게 믿을게. 우리 모두의 사랑을 담아 인사할게, 잘 지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