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면 자원조사, 마을에서 보물을 찾다
앙시(仰視)라는 말은 두툼한 사전을 뒤적여야 나올법한 낯선 언어표현이다. 현대에 일상적으로 잘 쓰이지 않는 말이니 어색하기만 하다. 찾아보니 사전적 의미로는 ‘존경하는 마음으로 우러러 봄’이라고 명시돼 있다.
해남군 산이면 주민자치위원회는 3차에 걸쳐 마을자원조사를 기획했고, 6월 말에 1차 조사로 2일간 산이면 40여 개 마을에서 드론 촬영과 함께 마을 자원조사를 진행했다. 앙시라는 말은 덕성마을 폐가에서 찾은 백로계(白鷺禊)라는 계책에 나오는 내용 일부분이다. 요즘 흔히 사용하는 한자인 계(契)를 사용하는 것이 아닌 禊(계제사 계)자를 사용했는데 과거에 흔히 사용하던 용례이다. 여기서 보는 계(禊, 계제사 계)자의 의미는 ‘액운을 떨쳐 버리기 위해 물가에서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계(契)자와 다른 계(禊)자를 쓴 이유는 기회가 있을 때 자세히 고찰해 봤으면 한다.
모르는 글자를 사전을 찾아가며 어설프나마 해독해보니 갑자년(1924년)에 태어난 친구 5~6명으로 구성된 갑계(甲契) 계(회)원들이 정한 계칙에 나온 문구이다. 계원의 의무는 哀慶喪弔(애경상조)시에 소주(燒酒)를 몇 말 몇 되씩을 내놓는다 등 상부상조의 원칙, 계칙(회칙)을 위배할 때는 이러저러하게 처리한다는 내용이 간략하게 정해져 있다. 의역해 풀어보면 회원들은 ‘세상 사람들로 존경을 받는 행위를 해야 한다’라는 것이다. 소위 남의 시선과 체면, 예의를 중요시했던 당시의 풍습을 짐작할 수 있다.
계는 춘추(봄, 가을) 연 2회 실시했고 봄 행사는 강신(講信)이라 했는데 이는 옛날에 조상님들이 향약이나 두레, 계에서 쓰던 표현이고, 회차별 책임자는 유사(有司)라는 말을 사용했다. 유사는 전통사회에서 일시적 사무나 소임을 맡은 사람을 일컫는다.
또 살펴보니 계묘년(癸卯年, 1963년)에 결의했으니 40세 즉 불혹(不惑)에 모임을 결성했음을 알 수 있고, 기미년(己未年, 1979년)까지 16년간의 기록이 한문 붓글씨로 작성돼 있었으나 80년의 모임 여부는 알 수 없고, 81년에 볼펜으로 적은 한문에 이르기를 ‘돈을 나눴고, 누가 누구에게 송금추심했다’라는 간단한 몇 줄이 계책의 마지막 내용이다.
예로부터 전통이 있는 마을에는 향약이나 대동계, 계, 두레 등이 있었고 반드시 그 기록물이 존재했었다. 현대에도 마을의 분쟁이나 갈등 발생 시 마을규약이 필요하듯 문서로 정리된 약속(회칙)은 그 시대를 읽을 수 있는 타임머신인 동시에 우리가 보존 계승해야 할 마을공동체의 보물이다. ‘어르신이 한 분 돌아가시면 도서관이 불탄다’는 말이 있듯이 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알고 계신 어르신들의 마을 이야기를 구술채록하고, 마을이 품은 터무니를 찾아서 아카이빙 하는 것은 주민자치가 해야 할 많은 일 중에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일이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