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민수묵소장품전, 수묵비엔날레전시 중 최고였다
당대 남도를 대표했던 의제 허백련의 연진회를 비롯해 이당 김은호의 후소회를 대표하는 화가들 중 장덕, 김한영, 배정례, 안동숙 등은 남도에 연고를 두고 활동했다. 이로인해 남도화단은 예향의 중심이 됐다.
후소회 출신 남도의 대가로는 채색화와 사실적인 화풍의 작품을 그린 취당 장덕, 장성출신 현당 김한영, 결혼으로 해남댁이 된 숙당 배정례, 함평출신 오당 안동숙이 있다. 장덕은 서울에서 목포로 이주해 남도화단의 일원으로 작품 활동을 했고 이당 김은호의 제자로 세필인물화와 기명절지화를 잘 그렸던 김한영은 의제 남농에 버금가는 남도 화단의 독자적 위치의 대가였다. 숙당 배정례는 천경자, 박래현, 이현옥과 함께 한국화 4대 여성화가로 꼽히는 채색인물화의 대가였으며, 여성으로는 드물게 이당의 제자가 돼 채색화와 미인도에 능했다.
안동숙 역시 김은호의 제자로 1941년부터 후소회전에 출품했다.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술대학장과 미술대학원장으로 후진을 양성했으며 자신의 작품 120여점과 수집품 400여점을 함평군에 기증하기도 했다.
이들은 일제강점기부터 80년대 초반까지 격동의 근현대시기를 예술가로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인물과 채색에 능한 이당의 가르침 위에 각자 자신만의 세계를 활발하게 개척하고자 했으나 스승과 제자가 무릎을 맞대고 교육하던 전통예술교육의 무게중심이 대학으로 옮겨가면서 구심점을 잃고 흩어졌다.
그러나 80년대 후반까지도 남도 예향의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한 한국화의 대가들이다. 현당(玄堂) 김한영(1913-1988)은 전남 장성 출신으로 후소회 회원으로 1939년 제2회 후소회전에 출품했다. 1939년 제17회 조선미술전람회에 <기(碁)>와 1940년에 제18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선을 했으며 1970년대 후반 해남에서 광주로 이주했다. 현당은 바다에 사는 신선과 산에 사는 나무꾼이 만나 이야기하는 <어초문답도>와 <어부도>, <기명절지도> 등 당대 남도를 대표하는 한국화가였다. 담담한 채색으로 그린 <노안도>는 노후의 안락함을 기원하는 그림으로 현당 김한영의 노안도는 해남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화원면 마산리에 연고를 둔 숙당 배정례(1916-2006)는 1992년까지 해남에서 활동하며 틈틈이 제자를 길렀으며, 행촌 김제현 박사와 우록 김봉호 선생과 함께 당대 해남의 문화예술을 대표하는 인물로 손꼽혔다. 숙당과 현당의 해남 활동 덕에 후소회, 연진회 화가들이 해남출입이 잦았고 그때마다 해남사람들의 환대로 지금도 해남 곳곳에 이들의 작품이 많이 남아있다. 천경자, 박래현, 이현옥 등과 국내 4대 여성 한국화 화가로 평가를 받았던 배정례는 동경일본미술대학을 졸업했으며 해방 이후 여자동양화연구소를 경영, 후학을 양성한 한국화가이기도 하다. <정(庭)>(1940년), <봄>(1941년), <인물>(1943년) 등으로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을 했다.
해남 대흥사 입구에 화실을 짓고 광주 등 남도를 기반으로 활동했으며 이후 1992년에 남도를 떠나 의정부로 이사를 했다. 현재 의정부에는 기념관이 설립돼 있다.
지난 17일 문화예술화관에서 해남군민들이 소장한 수묵작품전시가 열렸다.
소장작품의 내력이야 각각이지만 필자는 전시를 보며 지난 한 세기 한국미술의 흐름과 해남의 예술적 저력을 읽었다. 해남사람들이 소장해온 60여점의 작품이 한자리에 모이니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전시 중 가장 중요한 전시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