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사업 그 자체가 마을공동체는 아니다
관 주도의 사업이 아닌 지속 가능한 주민의 삶, 다양한 주민의 욕구와 필요를 반영한 공동체 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런데 일부 지자체 단체장의 치적 쌓기, 일부 공무원의 실적 수단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결과 별의별 수많은 종류의 마을만들기 공모사업을 진행한 실적을 두고 굳이 마을공동체가 많아졌다고 억지스러운 주장을 보게 된다.
몇 번의 공모사업을 진행했다고 바로 그 동네가, 그 공간이, 함께한 사람들이 우리가 바라는 ‘공동체’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당연히 공모사업이 악도 아니고, 보조금이나 지원금을 받아서 쓴다고 그 행위 자체가 나쁜 것도 아니다.
잘 활용하면 지방소멸에 대처하고 주민 스스로 지역의 문제해결을 위한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리빙랩 방식으로 대학 등 민・관・학이 함께 협치와 거버넌스를 통해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지역의 의제를 찾기도 한다.
주민의 참여를 바탕으로 마을계획을 하고 마을총회를 여는 프로세스는 민주적이고 지속 가능한 공동체와 주민자치를 실현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떨까? 정작 지원금이 가야 할 곳에 공모사업 지원금이 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진짜 필요한 사람들은 정보도 없거니와 그 어려운 제안서는 언감생심 저 먼 달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결국 많은 경우에 농산어촌에서는 도시에서 돌아온 귀농 귀촌한 사람들이, 도시지역에서도 그런 정보습득과 문서작성이 가능한 사람들만의 잔치가 된다.
필자는 도시와 농촌에서, 마을에서 만나는 주민들, 아짐들, 아재들, 농민들, 이장님들 공모사업계획서를 무던히도 써드렸다. 누군가는 내게 '주민들이 그렇게 길들면 더 배우지 않는다'라며 준엄한 가르침을 하사하신다. 미안하지만, 농산어촌의 상황과 현실을 너무도 모르는 한가한 소리이다. 도시라 해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온갖 생업에 바쁜 주민들이 공모계획서와 회계 교육 등에 시간을 허비할 이유가 눈곱만큼도 없다. 소위 ‘주민역량 강화교육’의 피로도는 폭발 직전의 상황이다. 중간지원조직이라는 수많은 센터가 우후죽순 생겼지만, 주민들에겐 새로운 옥상옥의 기관일 뿐 실제적인 지원기관의 역할과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마을공동체, 도시재생, 사회적경제, 공익활동, 주민자치, 마을교육공동체, 사회혁신, 여성친화마을, 청년마을, 안전마을, 정보화마을, 복지마을, 무슨 무슨 마을, 무슨 무슨 지원센터에서는 밤하늘의 별만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언필칭 눈먼 돈(피 같은 세금)이 춤을 춘다.
온갖 공의로움과 선함을 가정한 더 업자화된 일부 주민들, 서푼 어치 보조금에 보조금 사냥꾼이라는 노예가 되는지도 모르는 서글픔이 있다. 각종 지원센터를 만들어 국민의 세금인 위탁금으로 지도 감독이라는 허울로 갑질하는 일부 공무원들에 분노하는 시민들도 많다.
그 틈새에 부끄럼 없이 주민 위에 군림하는 일부 무슨 무슨 센터들, 주민의 역량 강화를 진행한다면서 어마어마한 대가를 챙기는 일부 용역사들을 언제까지 모른 척 방치할 것인가?
그렇다면 작금의 왜곡된 공모사업 제도를 개선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에 대한 문제해결을 위한 공론장과 주민과 행정 전문가의 의견수렴을 통한 제도개선이 순차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물론 행안부의 예규(보조금 관리기준)처럼 현실에 맞지 않고 주민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듯한 불신의 눈으로 보는, 규제와 관리 감독에 초점을 맞춘 법규정들도 삭제 및 수정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법이나 정부의 규칙 이전에 공모사업을 대하는 행정과 국민의 의식과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다 부질없는 것들이다.
공모사업은 마을공동체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수단과 방법에 불과하다. 더 늦기 전에 마을공동체 사업에 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래야 무너져가는 마을공동체에 희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