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수 없지만 설날 아침에 그리는 고향
곧 설이다.
그러나 요즘은 별 의미 없는 설이 되었습니다. 더구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오갈 수도 없는 세상이 되고 보니, 겨우 고향의 의미를 발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고향예찬의 대표적인 문학작품은 중국 도연명의 ‘귀거래사’가 있습니다. 첫 연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이제 돌아가자. 고향의 정원은 황폐해지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으랴.”
또 고향의 의미를 극명하게 설명하는 고사성어 ‘수구초심’도 있습니다. 이와같이 고향은 우리가 생을 마감하는 그날까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어느 시인은 “흘러가는 것들을 견딜 수 없네”라며 세월은 흘러가고, 인생은 무상하며 지나간 추억은 고통스럽다고 회한의 탄식을 합니다.
그러나 고향이 꼭 고통으로만 다가올까요?
고향은 언제나 내게 어머니처럼 다가왔습니다.
언제나 다정하고 변함없고 부드럽고 포근한 어머니의 품으로 다가왔습니다. 또 고향은 언제나 사랑으로 다가왔습니다. 생각만 해도, 가슴 떨리는 첫사랑의 여인으로 다가왔습니다. 비록 서툰 입맞춤으로 얼굴이 빨갛게 타올랐던 이루지 못한 사랑이었지만 가슴 밑바닥에 남아있는 붉고 진한 첫사랑으로 다가옵니다.
또 고향은 영원한 우정으로 다가옵니다. 죽마고우라고 했던가요?
바지가랭이에 긴 장대 끼고 고샅을 누비던 코흘리개 친구들. 꼬리연 뒤로하고 보리밭을 내 달리던 친구들.
요즘 아이들 참외서리 닭서리가 무슨 말인지 알기나 할까. 고향이야기는 언제나 끝이 없는 기쁨과 즐거움이 혼재되어 픽션과 논픽션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가끔은 아롱아롱 눈물 젖은 작은 슬픔으로 다가옵니다. 형체도 없고 그래서 그림자도 없지만, 봄이 되면 ‘보리고개’라는 무서운 이름으로 찾아왔습니다. 그 높고 험한 고개를 넘어야 진짜 따뜻한 새봄이 찾아왔습니다.
아! 그때부터 만발한 꽃으로 이름 모를 꽃으로 다가왔습니다.
울타리 기어오르는 개나리, 마당을 가득 메운 살구꽃, 복숭아꽃, 감꽃, 산허리를 휘감아 도는 진달래, 철쭉.
뿐만 아니라 찔레꽃, 산딸기에 할미꽃도 피었습니다.
허허벌판 논바닥에는 융단처럼 곱고 부드러운 자운영꽃이 만발했습니다. 꿀벌이 윙윙거리는 꽃밭에서 팔 베게하고 누워 청운의 푸른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고향은 언제나 사랑과 꽃과 눈물 속에서 피고 지는 행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