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생각
필자는 옥천면에서 태어나 옥천초와 해남중 졸업 후 광주와 서울 등에서 학교를 다녔고 방학 때는 주로 고향에서 살았다.
광주에 터전을 마련한지도 약 40년이 됐다.
그런데도 어릴 적에 살았던 시골집, 집안의 우물, 동네 시냇물, 동네 앞산과 뒷산, 논밭, 신작로 그리고 할머니와 부모님, 같이 놀던 친구들이 꿈속에 자주 나온다.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도.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동요에서 나오는 꽃피는 산골은 삼천리 금수강산 어디에도 있는데, 왜 고향의 꽃피는 산골에서 놀던 때가 특별히 그리울까?
‘유식론(唯識論)’에 의하면, 안이비설신 이라는 다섯 감각기관이 색성향미촉 이라는 대상과 접해 각각의 식(識)(전5식)이 발생하고, 이 각각의 식에 의해 의식(제6의식)이 생긴다.
이 의식이 모여 자아의식(제7말라식, 사량식=思量識)이 생기고, 인식하고 경험한 모든 기억 정보들이 축적돼 저장(제8아뢰야식. 저장식=貯藏識. 잠재의식)돼 있다가 다음에 어떤 조건을 만나면 생각과 행동으로 나타나고 그 생각과 행동은 또 저장된다고 한다.
우리가 눈으로 본 아름다운 것들, 귀로 들은 좋은 소리들, 코로 맡아본 좋은 냄새, 혀로 맛본 좋은 맛, 몸으로 느낀 좋은 느낌들, 오감에 의해 머리에서 인식된 의식(意識)들은 어릴 적에 처음으로 느끼거나 경험했기 때문에 저 밑바탕에 강하게 기억, 저장돼 있는 것이다.
그리고 처음으로 경험한 곳이 고향이기 때문에 고향은 더욱 잊혀지지 않는다.
또한 고향은 이해관계 없이 오직 사랑과 믿음으로만 형성된,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삼촌 형제자매 그리고 친구들과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았다.
그러기에 어릴 적의 고향과 그때 같이 살았던 사람들은 대부분 좋은 기억으로 강하게 저장돼 있다.
또 어린 시절 고향에서 살 때, 순수한 동심과 미래에 대한 꿈과 기대 그리고 가능성을 가지고 살았기에, 시간이 흐른 뒤 돌이켜 보면, 좋았던 일이나 나빴던 일이 모두 미화돼 아름다운 추억으로 저장돼 있다.
이와 같은 몇 가지 생각들에서 본 바와 같이, 고향에 대한 좋은 느낌과 그리움(향수=鄕愁)은 대다수 사람 속에 저장돼 있는 가장 보편적인 감정으로 본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거의 모든 사람들은 고향을 그리워하며, 고향은 언제 가보아도 변함없이 정겹다.
나뭇잎은 가을이 되면 떨어져 뿌리로가 영양분이 되고(낙엽귀근=落葉歸根), 연어는 산란을 하려 할 때 반드시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와 알을 낳는다.
사람도 나이를 먹을수록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커가고 또 도시생활을 접고 고향에서 살고 있는 이들도 많다.
어디서 살았던 간에 생을 마친 후에는 고향에 묻히는 사람도 많다. 모두가 향수와 귀소(歸巢)본능에서 나온 현상이다.
며칠이 지나면 민족고유의 명절인 설이다. 매년 그러했던 것처럼(필자는 1년 평균 7회~10회 정도 고향에 다님) 꼭 고향에 가서 조상의 묘를 찾아 성묘하고, 고향산천을 꼼꼼히 한 바퀴 돌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