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땅끝서 일어난 문예르네상스
내가 문화기획자라는 낯선 분야에 뛰어들어 일한 지 햇수로 9년째다.
맨 처음 화원면 매월리의 작은 마을에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공예수업과 요가수업을 주1 회씩 실시했던 게 처음 시작이었다.
1994년 겨울 이곳 화원면 매계마을에 귀촌했다.
남편이 오랫동안 근무하던 목포대학교를 퇴직하면 조용히 그림을 그리면서 시골 생활을 하리라는 계획하에 여러 대상지를 물색하던 중, 그해 5월 처음 방문했던 매계마을에 펼쳐진 노란 유채밭 구릉들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바다가 보이는 농가 주택을 구입해 매계마을 주민이 됐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매계마을은 전설의 고향에나 나옴 직한 오지였고 가까운 목포로의 나들이에도 배편을 이용하곤 했던 곳이었다.
귀촌 후 한 10년은 주변의 풍경들을 열심히 스케치하면서 작업에 몰두하고, 작은 집을 짓고, 나름 시골 생활에 충실했다.
지역 주민들과도 화합을 위해 매계마을 첫 여성 이장이 돼 마을 일도 거들었다.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전시회를 열고 하는 생활을 지속하던 중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가 나 혼자만의 유희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온전히 시골 생활에 스며들지 못하는 한계를 느끼던 중 남편의 권유로 전남문화재단의 문화교육자 양성 교육을 받게 됐다.
2년 동안 단계적으로 문화기획자가 무엇인지 문화기획자로서 해야 할 역할은 어떤 것들인지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나와 같은 문제를 가지고 전남 각지에서 모여든 많은 예비 문화교육자들과 함께 고민하고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만남이 좋았고 또한 전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선배 문화교육자들의 멘토 활동이 큰 도움이 되었다.
문화교육자는 간단히 말하면 내가 사는 터전에서 주변 사람들과 함께 문화 예술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활동이라 할 수 있다.
흔히들 문화 예술이 밥 먹여주느냐고 말하지만, 밥은 먹여주지 않지만, 마음의 평화와 행복은 줄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대답으로 시작되는 활동이라 하겠다.
특히나 요즘처럼 문화 예술이 국격이 되는 시대에서는 밥도 먹여주는 지름길이 되기도 하지 않던가.
2014년을 첫 시작으로 많은 일을 수행했다.
화원 문화학당을 결성한 것은 지역의 전문예술인들이 모여서 좀 더 체계적으로 문화기획 일을 해 나가고자 함이다.
화원 문화학당의 결성 후 매계마을에서 시작한 작은 기획사업들이 점점 규모가 커지면서 화원을 넘어 전라남도로 확장돼 청년예술가들과 함께 강진군, 영암군으로 문화 예술의 소외 지역으로 예술여행을 가기도 했다.
시골 어르신들이 처음 접해보는 공연예술과 체험예술들을, 너무나 행복해하시는 모습들을 통해 보람을 느낄 수 있었고 나도 행복할 수 있었다.
여러 가지 기획사업 중 가장 의미 있는 일은 2018년 농림수산부의 공모사업 ‘시골 농협 유휴공간 활성화 사업’에 화원농협이 선정, 농기구 수리센터를 리모델링해 화원 미술관으로 개관한 사업이다.
지역의 관계기관이 지역의 예술인들과 주민을 위해 발 벗고 나선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직은 문을 연 시작에 불과 하지만 이 문화공간이 만들어진 것은 화원지역에 문화 예술이 주민들의 삶 속에 녹아 들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한다.
한 지역에 눈 밝은 문화기획자가 있는 것은 그 시작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기에 내가 문화기획자라는 것에 감사하며 자부심을 느낀다.
앞으로 우리 화원 문화학당이 나아갈 길은 젊은이들과 공동체를 만들어 그들과 함께해 나갈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일회성이 아닌 지속 가능한 일을 찾아 어떤 방향으로 나갈 수 있을까 하는 화두를 갖고 깊은 모색 중이다.
점점 시골의 인구는 감소하고 젊은이들은 부재하는 현상에서 문화와 예술을 통해 그 돌파구를 찾고 싶다는 숙제를 안고 있다.
그 숙제를 풀고자 애써보는 일이 남아있기에 70이 훌쩍 넘은 나에게 문화기획자로 사는 삶은 아직도 지속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