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재 헌시 - 그대의 손은 백성의 마음이어라

2010-09-17     해남우리신문
우기가 지난 들판에 가을꽃들 다투어 피고 고적한 뜰에 새소리 더욱 낭랑한 녹우당 툇마루에 오롯이 앉은 그대여  

그림은 고독한 마음의 독백 같은 것
애당초 출세의 길에 뜻을 두지 않았던 터라
오직 책과 그림만이 말없는 그대의 벗이었으니 무슨 허명(虛名)엔들 마음 두었으리

세상이 어지럽고 탁해지면서 사람도 예술도 날로 억새꽃처럼 가벼워지는데 어찌 예술만이 홀로 맑고 드높을 수 있으리요.
화도(畵道)는 자연의 길과 따로 있지 않고 삶의 길과도 멀지 않는 것을,

수 삼년 마구간 기웃거리며 말의 자태와 눈을 마음으로 새겼던 그대의 그림 속에는 말 울음소리가 들리네

세상의 복락보다는 슬픔을 더 많이 겪은 탓인지 지천명이 되기도 전에 벌써 백발이 다 되신 그대여
누군가는 그대의 눈가에서 우수(憂愁)의 그늘을 보고 가고 또 어떤 이는 그대의 얼굴에서 연민의 정을 느끼고 간다지만 정작 그대는 한 번도 한양의 불빛 그리워 한 적 없었지요

그대는 산책길에 보고 온‘나물 캐는 아낙네들’을 잊지 않으시고 읍내에 나가‘짚신 삼는 노인’과 한참을 보내다 왔다지요
흙냄새 땀냄새 물씬한 그 사람들에게 자꾸 정이 간다고 풍속에 길을 찾으시던 그대는 조선 풍속화의 선구자

오늘 백포의 하늘에 연꽃으로 피어나신 공재공이여 그대는 조선 화단에 새로운 길을 연 신의 손
그대의 손은 풀비린내 묵향처럼 그윽한 백성의 마음이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