⑧해남 설화와 해남의 해양사 - 미황사·서동사 창건설화에 담긴 고대 바닷길
이 글에서는 해남에 전승돼 오는 설화 중에서 해양 및 역사와 관련된 ‘해양 역사 설화’ 몇 가지를 소개한다. 물론 설화는 엄밀히 말해 역사는 아니지만 설화 속에 내포된 역사적 의미를 유추해 내는 일은 의외로 재미와 흥미를 느끼게 한다.
미황사 창건설화
해로 통한 불교 전래
“돌로 만들어진 배가 사자포구에 도착했다. 그 안에는 불상과 경전이 가득했다. 의조스님이 꿈에 황금 옷을 입은 우전국의 왕이 등장해 검은 소를 따라가 그 검은 소가 멈춘 자리에 절을 세우라는 현몽을 받고 미황사를 세웠다.” 미황사 창건 설화다.
먼저 ‘돌로 만들어진 배’(이하 ‘석주’, 石舟)라는 키워드는 서남해안 지역에 다수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해남 미황사와 고창 대참사, 부안 내소사 설화이다.
이 ‘석주’는 중국 절강성 관음신앙 성지인 보타도에 그 형상이 기념물로 보호받고 있어, 이로부터 석주가 보타도로부터 유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석주’라는 매개는 일찍이 국제무역을 통해 한반도에 알려졌고, 또 불교 유입과 함께 ‘석주’의 모티프도 전해졌을 것으로 보인다.
다음 키워드인 ‘우전국’은 실크로드 남로에 위치한 지금의 중국 허톈 지역에 있는 고대 국가 이름이다. 인도불교가 중국으로 전해진 요충지로 중국 최초 불교 중심지였다.
서역인들은 실크로드 남로, 그리고 우전국을 거쳐 당나라 수도 낙양으로 불교를 전파했고, 이러한 중국 불교문화는 다시 절강성의 보타도를 경유, 해로를 통해 신라에 전해졌다.
말하자면 미황사 창건 설화는 육로를 통해 인도에서 우전국을 거쳐 중국으로 전래된 불교가, 8세기에 다시 중국 강남의 보타도, 그리고 해로를 통해 우리나라 서남해안 지역으로 전해졌던 사연을 전해준다고 할 수 있다.
서동사 최치원 창건설화
신라 말 한‧중 해로 유추
화원면 금평리 운거산(雲居山) 기슭 서동사는 고운(孤雲) 최치원이 창건했다는 짤막한 설화가 전해온다.
우선 ‘구름이 거하는 산’이라는 의미의 ‘운거산’에 ‘외로운 구름’이라는 뜻의 ‘고운’을 호로 삼은 최치원이 서동사를 창건했다는 이야기로 연결돼 운거산은 외로운 구름 최치원이 거처했을 것 같은 의미심장한 느낌을 준다.
이중환의「택지리」에는 최치원이 당나라에 유학을 떠난 포구와 중국에 이르는 항로가 적혀있다.
영암 구림촌의 상대포에서 출발해 흑산도, 홍의도(지금의 홍도), 가가도(지금의 가거도) 등의 섬을 거쳐 태주 영파부 정해현에 도착했다는 내용이다.
최치원의 서동사 창건 설화는, 최치원이 화원의 서동사와 인접한 구림촌 상대포에서 상선에 편승해 당나라로 건너갔다는 역사적 사건과 관련해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여진다.
그런데 최치원 관련 설화는 서동사에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어서 그 역사적 의미가 남다르다.
예컨대 최치원이 당으로 건너갈 때 경유했음직한 비금도와 우이도에도 최치원이 가뭄의 고통을 겪는 주민들을 구했다는 설화가 전한다.
이러한 설화들은 최치원이 비금도와 우이도를 들렀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그렇다면「택지리」의 기록과 서동사와 신안 섬들의 최치원 설화를 통해서 ‘영암 구림-해남 화원-비금도-우이도-흑산도’로 이어지는 최치원의 항로를 유추해볼 수 있다.
이는 앞서 미황사 설화에서 유추한 8세기의 한중항로가 9세기 후반의 최치원 항로로 이어져 지속됐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송지 어란당집
해양 수호신 설화
송지면 어란마을에는 여성 해양 수호신 설화가 전한다. 그 내용은 어느 여인의 시신이 바다에서 떠내려와 주민들이 시신을 모셔주고 당집의 신으로 좌정시켜 바닷가에 석등롱에 매일 밤 불을 밝혔다는 이야기이다.
여인을 해양 수호신으로 모시는 설화는 우리나라 서남해안 지역에 여러 사례가 전한다. 부안의 개양할미 설화, 진도의 뽕할머니 설화 등이 그것이다. 어란의 사례도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고기잡이 하러 떠난 마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등을 들고 산에 올라 며칠 밤을 비추다 죽었다는 마조 여인의 설화는 중국 바닷가에 널리 퍼져 있는 여성 해양 수호신의 아주 저명한 사례이다.
역사와 설화는 둘 다 의미가 있다. 설화가 가진 힘은 단순히 어떠한 역사적 사실을 재미있게 접근하는 것을 넘어서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도록 시야를 열어준다.
역사는 설화에게 문학적인 화소를 던져주고 그것이 역사적 의미를 가진 이야기로 전승되게끔 이끌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