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역사 대통령제 성공하려면, 국민 역할 중요
우리나라는 1948년 8월15일 정부수립 이후 1960년의 제2공화국에서 의원내각제를 1년 미만 시행한 것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약 70년 동안 대통령제를 채택해 시행하고 있다. 그동안 12명의 대통령이 선출돼 이 나라를 통치했는데, 재임 중의 업적에 대한 평가는 각자 달리 공도 있고 과도 있지만, 끝에 가서 보면 대부분(현직 대통령은 재임 중이니 제외) 불행하게 끝났다. 성난 국민에게 쫓겨 망명을 가거나, 군인들에 의해 강제퇴임 당하거나, 부하의 총탄에 사망하거나, 본인이 감옥에 가거나 아니면 자식들이 감옥에 갔으며, 또는 자살하거나, 탄핵당하는 등 모두가 좋지 않았다. 이 중에는 한때 민족의 영웅으로 또는 국민의 큰 지도자로 존경 받았던 분들도 있다.
대통령제는 250년 전 미국에서 시작해 2차 세계대전 후에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들이 도입했는데 거의 모든 국가들의 대통령이 독재나 부패, 무능 등으로 말로가 좋지 않게 끝났다. 돌이켜 보면,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할지라도 이를 받아들이는 국가의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여건에 따라 성공여부가 결정됐다는 것이다. 즉 같은 귤나무라도 따뜻한 남쪽에 심으면 탐스러운 귤이 열리지만 추운 북쪽에 심으면 탱자가 열리는 것이다(남귤북지=南橘北枳).
대통령제가 성공하려면 이를 운영하는 위정자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함께하는 다른 제도가 원칙대로 보장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첫째, 엄격한 권력분립제도가 보장 돼야한다. 정권을 잡은 대통령이 국회를 지배하고 사법부를 통제한다면 반드시 독재국가가 될 것이다. 대통령제가 미국에서 탄생할 때 엄격한 권력분립을 전제로 했으며 지금도 미국의 행정부는 법률안 제출권이 없고 입법권은 오직 의회만이 가지고 있다.
둘째, 연방제에 가까운 지방자치제도가 보장돼야 한다. 모든 권력과 권한이 중앙정부에 집중돼 있으면 효율적인 지방자치가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독재화될 것이고 비난받을 일이나 책임질 일이 있으면 모두 대통령에게 향할 것이다.
셋째, 정당이 민주화돼야 한다. 특히 민주적인 공직 후보자의 추천제도가 보장 돼야한다. 공직후보자의 추천을 당의 총재나 당의 집행부가 좌지우지한다면 모든 선출직이 중앙당에 예속되고 이런 정당이 집권하면 반드시 독재화될 것이다.
넷째, 권위 있는 사법기관(헌법재판소나 대법원)이 있어야 한다. 권위 있는 재판기관이 시시비비를 최종적으로 심판해주고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국가기관과 국민은 이를 받아들이고 승복하는 전통이 확립돼야 한다.
다섯째,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제도가 보장돼야 한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 되려면, 공정한 규칙, 중립적인 선거관리, 자유로운 선거운동, 규칙위반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지켜져야 한다. 250년의 역사를 가진 미국에서도 지금까지 대통령선거 개표 때마다 선거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매우 시끄럽다. 그래도 미국은 권위 있는 연방대법원의 판결에 의해 해결되고 있다.
여섯째, 언론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돼야 한다. 모든 국민의 말할 권리, 들을 권리, 알 권리가 최대한 보장돼야 하며, 공익을 위해 이를 제한할 때에도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있을 때에만 최소한으로 제한해야 한다.
위와 같은 제도들이 확고하게 보장돼야만 대통령제가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깨어있는 국민의 역할이다. 국민이 민주주의와 좋은 제도를 수호하려는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어 이를 훼손하는 위정자에 대해서는 저항을 해야 하고, 홍수같이 쏟아지는 언론 보도를 정제해서 받아들여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수준 높은 국민이 많이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제를 시행한지 이제 70년이 됐다. 그동안 시행착오도 많이 거쳤지만 반면에,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국민이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의 대가로 성공적인 대통령제를 뿌리내리기 위한 여건도 많이 좋아졌다.
오는 3월9일은 제20대 대통령선거일이다. 후보들의 치열한 경쟁과 국민들의 예리한 주시와 현명한 선택으로 대통령제가 몇 단계 더 발전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