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가져다준 소중한 흙집
2010-09-17 해남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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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곤파스’와 ‘말로’ 두개의 태풍이 서남해안 지역을 휩쓸고 간 뒤 곳곳에서 농작물 피해가 속출했으나 우리 지역은 그리 큰 피해 없이 지나간 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태풍으로 인해 잃었던 삶이 흙집으로 다시 태어난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이번 태풍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을 주고 싶다.
99년 태풍 ‘올가’로 남편의 일터이자 우리 가족의 삶의 터전이었던 시설원예 하우스를 하루 아침에 모두 날렸다. 당시 하우스를 복구했으나 설상가상 유가상승으로 인해 더 이상 하우스를 운영할 여력이 없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세 아이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해야 했기에 2001년 해남읍으로 이주해야 했다. 빠듯한 살림에 6년간 4차례나 아파트를 옮겨 다녀야 했다. 세 아이를 키우는 우리에게 아파트 생활은 이웃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아 늘 조심스러웠고, 아토피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게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열어주고 싶어 2006년 삼산면 창리에 터를 잡고 남편이 손수 황토집을 짓기로 했다. 먼저 집지을 재료인 흙과 돌, 나무를 구하고, 이듬해 3월부터 황토집을 본격적으로 짓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9개월 만에 부족하지만 동그랗고 예쁜 흙집이 완성되었고, 2007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우리가 꿈꾸었던 흙집 보금자리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동안 잦은 이사로 지쳐있던 우리 가족에게 내 집 마련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생애 가장 큰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아 너무나 행복했다. 우리 집 주변에는 장수하늘소, 반딧불, 풍뎅이, 사슴벌레 등 다양한 곤충들이 서식하고 있어 아이들에게는 훌륭한 자연학습장이 따로 없다.
유난히 곤충이나 동물을 좋아하는 우리 아이들은 흙집에 들어오자마자 강아지를 키우자고 졸라댔고, 강아지 두 마리와 고양이를 데려다 키우면서 다섯 식구가 여덟 식구로 늘었다.
흙집 보금자리에 들어온 지 올해로 4년째, 집이 특이하고 예쁘다며 지나가다 들르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흙집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남도민박을 열었다. 남도민박 사이트에 올리자마자 서울, 경기, 부산, 충청도 등 전국 각지의 도시사람들이 직접 찾아 오고 있다.
현재 농업인이자 짚풀공예가로 활동하고 있는 남편은 이곳에 짚풀공예 체험장을 열고 흙집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서로 교류하면서 살기 위해 집 주변을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고 있다. 남편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새롭게 변해가는 우리 집을 볼 때면 태풍으로 인해 날려버렸던 지난 10년의 세월은 점점 잊혀져가고, 태풍 ‘올가’로 인해 바뀐 우리의 인생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에게 자연친화적 삶을 열어 주고 싶어 시작했던 우리의 흙집 짓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직접 체험하게 되었다. 태풍이 아니라도 쌀가격 폭락 등으로 농촌의 현실은 너무도 어렵다. 주저앉지만 않는다면 비갠 뒤의 하늘처럼 밝은 내일은 꼭 찾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