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과 건강한 노년의 삶

2022-03-28     윤욱하/재경향우, 수필가
윤욱하(재경향우, 수필가)

 

 요즘 어른들께서는 코로나 팬데믹 예방 수칙 거리두기와 비대면이 길어지자 심심하다고 불평이시다.  
심심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딱히 마음을 둘 데가 없다는 말이다. 지루하고 따분해서 의욕이 없다는 뜻으로 매사가 나와는 상관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심심하면 스마트폰과 게임, 만화책, 축구, 야구 등 여러 가지 놀이가 많다. 그러나 머리가 크고 생각이 많은 어른들은 심심하면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져 머리가 무겁다.  
머리가 무거우면 마음이 짓눌려서 내 생각을 내 마음대로 다스릴 수가 없다.
그래서 옛날 어른들께서는 심심할 때 즉 혼자일 때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심심할 때 뭔가를 하고 싶은 강한 욕망 때문에 무엇인지도 모른 체 일을 저지르게 된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인간의 창조적 작업은 대체적으로 심심함의 산물이다.  다시 말해 인류의 역사는 심심함의 결과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뉴턴은 심심해서 사과나무 아래 누워있다 정적을 깨트리고 뚝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다.
파브르는 심심해서 땅 위를 기어 다니는 벌레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세계적인 곤충 학자가 됐다. 모두가 할 일 없이 심심함에 빠졌을 때 일어난 역사다. 
예술 역시 심심하고 따분함의 산물인 것은 마찬가지다.
다만 예술은 바쁜 일상 가운데서 심심함이나 한가로움을 찾아 혹은 만들어 즐기는 순간에 활화산 같은 에너지가 뒷받침된 적극적인 의지의 결과물이다. 
이와 같이 심심함이 젊은이에게는 창조의 순간이 된다.
그렇다면 강제된 팬데믹의 심심함이 어른들께는 독서로 보상받는 창조적 시간이 됐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더불어 지난 삶에 대한 긍정과 여유 그리고 넉넉한 관조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성찰의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도 있다. 
독서는 옛날부터 3여라 해 밤, 비 오는 날, 겨울처럼 한가해 조용하고 심심할 때 안성맞춤이다.  
나는 노년의 독서야말로 심심함을 창조적 소비로 바꾸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프랑스의 사상가 몽테뉴는 “독서처럼 대가 없이 주어지는 영속적인 쾌락은 없다”고 했다.
조선 영조시대에 책만 읽는 바보라는 ‘간서치’와 책벌레라는 뜻의 ‘두어자’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성균관 검서관 이덕무는 그의 저서「이목구심서」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군자가 한가롭게 지내며 일이 없을 때 책을 읽지 않고 다시 무엇을 하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작게는 잠만 자거나 바둑이나 장기를 두고 크게는 남을 비방하거나 재물이나, 여색에 힘을 쏟을 것이다
아아! 나는 무엇을 할까? 책을 읽을 뿐이다. 글 읽기는 본인에게는 기쁨과 즐거움이요, 타자에게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그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