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신화 속 서쪽땅끝은 작가의 창작 산실
5월의 노란 유채밭들이 해안 언덕 위에 펼쳐져 있었다. 한가로이 소들이 들녘에 누워있고 어미를 부르는 송아지의 울음소리, 밤이면 부엉이도 찾아오곤 했다.
1990년 대 서쪽땅끝은 숱한 상상력을 불러내는, 작가에게 영감을 주는 산실이었다.
속세의 도시적인 것을 뒤로 접어놓는 해변 산중. 원초적인 자연과 마주하기 위해 강아지 두 마리를 데리고 느릿느릿 산책을 나섰다.
서쪽땅끝은 속세의 시간이 정지된 태초의 공간, 태초의 원시성을 품고 있었다.
목포구등대로 향하는 월래길, 하늘과 바다가 어울린 노을빛이 눈부시다. 모든 사물이 정지돼 멈춰있는 곳. 그것은 신화 속 공간이었다.
스치는 바람, 한조각 구름
작은 풀꽃이고자
흔들리는 잎새에 숨어 지저귀는 작은 새이고자
갯가 작은 조각돌을 굴리는 파도소리 이고자
달빛에 반짝이는 숭어가 뛰고
할머니 떠난 빈집에 반딧불에 맴돌고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나는
내가 홀로 있지 않았음을 안다.
밤과 낮, 삶과 죽음, 아비와 어미
모두가 하나임을 깨닫게 하셨기에
은혜로운 신들의 충만함이여
나이 들어 다시 태어나는 기쁨이여.
서쪽땅끝은 내가 망각하고 내버린 기억을 상기시켜 줬다. 공중을 나는 새처럼 자유로운 상상력을 안겨줬다.
자연 안에선 모두가 한 몸이었다. 자연과의 만남이, 자연과의 교감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서쪽땅끝은 끝없이 혜안을 열어줬다. 평화와 평등이 모두 자연안에 있음을 열어준 혜안, 그것은 신의 선물이었다.
그러한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자연이 주는 따뜻한 영혼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서쪽땅끝의 원시성을, 태초의 따뜻함을 스케치북에 담고 또 담았다. 생태예술의 복귀, 서쪽땅끝이 나에게 준 선물이었다.
평등과 평화를 보여준 서쪽땅끝의 자연을 보여주고자 모든 그림을 원으로 처리했다.
서쪽땅끝과 인연을 맺은지 30여년, 서쪽땅끝은 30여년 동안 내보낼 수 없는 그림의 소재가 됐다. 나의 그림의 정신이 됐고 나만의 독특한 화풍을 일으켰다.
오는 4월5일부터 26일까지 화원미술관에서 내가 처음 만났던 서쪽땅끝을 세상밖에 내놓는다.
‘사라진 풍경들을 위하여’ 개인전은 작가 이정순의 작품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원시적인 신화 속 서쪽땅끝을 만나는 날이다.
서쪽땅끝이 키워낸 부엉이도, 시하호 바다도, 동백도 어린이도 만난다. ‘사라진 풍경들을 위하여’는 이미 사라진 서쪽땅끝을 아쉬운 눈으로 바라보는 전시회가 아니라 우리가 망각하고 내버린 기억을 상기시키는 시간, 생태예술을 공유하는 시간이다.
서쪽땅끝의 원시적 가치를 나누고 서쪽땅끝의 평화와 평등을 나누는 자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