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만평 정원 걸으며 오우가를 읊조리다

2022-04-19     임일도/전)재광주해남군향우회장
임일도(전)재광주해남군향우 회장)

 

 해남의 역사적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고산(孤山) 윤선도이다. 고산은 조선중기 문신이자 학자이며 시인으로 우리 국문학사에 독보적인 인물이다. 그는 85세(1587년~1671년)까지 장수했으나 당쟁에 휘말려 20년간 유배생활을 했고 19년간 은거생활을 했다. 
그래서 그는 벼슬길에서 물러나, 자연 속에서 고고하게 살다가 갔다. 
녹우당(綠雨堂)과 금쇄동(金鎖洞)에서 은거생활할 때 지었다는 오우가(五友歌)는 고전 중에서 으뜸가는 국민시조다. 고산은 은거생활 중 수석(水石)과 송죽(松竹), 달(月)을 벗으로 삼았다. 그칠 줄 모르고 흐르는 물의 부단(不斷)함,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바위의 불변(不變), 눈서리가 내려도 푸른 소나무의 불굴(不屈), 사시사철 푸르고 속이 빈 대나무의 곧은 성품과 불욕(不欲), 보고도 말하지 않는 달의 불언(不言)을 좋아해 벗으로 삼았고, 이 다섯의 덕목을 의인화해 노래한 것이 그의 대표작 오우가이다. 
필자는 녹우당을 여러 차례 가보았고, 고산이 말년에 은거하며 어부사시사 등의 명작을 남긴 완도 보길도 부용동의 세연정과 낙서제에도 젊은 시절 3차례 방문했으니 고산을 꽤 흠모했던 모양이다.
필자의 집 바로 옆에는 약 70만평의 공원이 있다. 아주 높은 산은 아니지만 등산할 산도 있고 큰 저수지도 2곳, 연못도 바위도 소나무도 대나무도 있다. 매일 저녁이면 이곳을 1시간 정도 걷고, 걸은 후에는 휴식을 취하는 세월이 어언 25년이 넘었다. 최근 입적한 베트남 출신 불교지도자 틱낫한 스님은 항상 걸으면서 기도하고 사색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틱낫한이 아니더라도 혼자 걸으면 사색도 하고 기도도 하고 자연과 대화도 하게 된다. 일 년 365일 중 특별한 일이 있는 15일 정도를 제외하고는 평균 350일은 이 공원을 걷는다. 20여년 간 이용하다 보니 이제는 나의 정원이라 착각할 정도다. 
조선시대 한양에 사는 한 선비가 매일 남산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며 경치도 구경하고 운동도 하면서 호연지기를 길렀다고 한다. 수 년 간 오르다 보니 친밀감도 커 자기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장기간 빌린 자기의 땅(借地)”이라며 날마다 올랐다고 한다. 우리는 이런 것을 차지경제(借地經濟)라 한다. 
해남군의 넓은 산천과 바다에서 생활하는 농어촌 주민들과 비교하면 작은 규모지만, 도심에서 이 정도를 이용하며 산다는 것은 대단히 행복한 것이다.
어느 때든 공원에 나가면, 고산의 벗들인 물도 있고 바위도 있고 소나무도 있고 대나무도 있다. 그래서 수석과 송죽은 언제든지 음미할 수 있는데 문제는 달이다. 달은 뜨는 시간과 날씨에 따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날씨가 좋으면 한 달 중 보통 17일간(음력 3일~19일)은 달을 보며 걷기운동을 할 수 있다. 이런 생활을 여러 해 하다 보니 이제 달의 모양만 보고도 오늘이 음력 며칠인지 95%까지는 맞힐 수 있다.
운동을 마치고 나면 의자에 앉거나 바위에 걸터앉아 호수에 비친 달과 하늘의 달을 보며 이태백이나 윤선도를 떠올린다. 특히 멋진 소나무 또는 대나무 사이의 달은 한층 더 운치가 있다. 오늘도 하늘 높이 달이 떠 있다. 달을 보며 걸으니 나도 모르게 어느새 고산의 오우가를 읊조린다. 
“내 벗이 몇인가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그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