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신미국사람들 솟대 세우고 강강술래 즐기다
송지면 군곡리…신성한 공간 ‘소도’ 있었다
솟대 세우고 제례의식
안전한 항해 기원
둥둥 북이 올렸다. 마을 정상에 서 있는 커다란 나무, 나무에는 방울과 북이 달려있고 꼭대기엔 새모양의 조형물이 달려있다. 신성목이다. 신성목이 서 있는 옆에는 커다란 거석이 놓여 있다. 천군이 아니면 드나들 수 없는 신성한 공간, 목욕재계한 천군이 북을 두드리며 하늘의 문을 열려 한다. 천신은 나무꼭대기에 달린 새를 통해 말씀을 전할 것이다
온몸을 떨며 북을 두드리며 춤을 추는 순간, 천군의 몸에 신이 내렸다. 천군은 그해 항해의 안녕을 신으로부터 약속받자 신성한 공간 둘레에 모인 마을 사람들에게 이를 전한다.
마한시대 국제해상도시였던 송지면 군곡리 사람들의 주 경제원은 해상무역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생사를 천신이 결정한다고 생각했기에 천신에게 제를 지내는 일을 가장 중요시 했다.
천신제는 씨를 뿌리는 5월과 수확철인 10월에도 지냈다.
이와 관련『삼국지』위서 동이전 한조에 “귀신을 섬기는데 국읍에는 각 한사람을 세워서 천신의 제사를 주관하게 하는데 이를 ‘천군’이라 한다. 또한 각 나라에는 별읍이 있는데 이를 ‘소도’라 하며, 그곳에는 큰 나무를 세우고 방울과 북을 매달아 귀신을 섬긴다. 그 지역으로 도망 온 사람은 누구든 돌려보내지 않아서 도둑질을 좋아하게 되었다” 라는 기록이 전한다.
또 “해마다 5월 씨앗을 뿌리고 나면 귀신에 제사를 지내고, 떼를 지어 모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술을 마시며 노래와 춤으로 즐겼다. 그들의 춤은 수십 명이 뒤를 따라가며 땅을 밟고 구부렸다 폈다 하면서 손과 발로 장단을 맞추는데 흡사 중국의 탁무와 같았다. 10월에 농사일을 마치고 나서 또다시 이렇게 한다”고 기록돼 있다.
송지 군곡리, 마을정상부
신성한 ‘소도’ 역할
송지면 군곡리 마한유적지에선 당시 사람들의 생활사와 제례의식 등을 엿볼 수 있는 유적과 유물들이 속속 발굴되고 있다. 특히 군곡리는 700~800년 동안, 청동기부터 마한시대, 백제초기까지 존속했던 마을이었다. 마한시대 하나의 마을이 통채로 발굴되는 흔치 않는 예인 군곡리에서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 마을 정상부에 위치한 공간이다.
마한 54개 소국 중 하나였던 신미국(침미다례)의 중심도시였던 송지면 군곡리 정상에는 커다란 거석과 함께 제의례를 행했던 건물터, 그리고 커다란 나무를 세웠던 구멍 흔적. 또 신성시되는 정상부를 감싼 도랑이 확인됐다. 죄인이 도망을 오면 돌려보내지 않았다는 신성한 공간인 소도인 셈이다.
소도는 신성한 공간이었기에 그 주변엔 집을 지을 수 없었다. 따라서 군곡리 촌락은 정상부에서 떨어진 곳에 조성됐다. 단 정상부 주변엔 넓은 터가 존재했다. 마을주민들이 축제를 행하거나 회의를 했을 광장인 것이다.
신성한 공간은 천신제를 지내는 천군만 출입이 가능했고 천신제가 끝나면 마을사람들은 광장에 모여 손에 손을 잡고 집단 무, 요즘의 강강술래를 행했다.
하늘을 향해 세운 커다란 나무 정상에는 새모양의 조형물을 끼웠다. 지금도 전해지는 솟대신앙이다. 하늘을 나는 자유로운 새, 마한인들은 새를 하늘과 인간 사이를 연결하는 매개로 보았고 커다란 나무를 타고 천신이 내려온다 믿었다. 거목은 무당집 표시인 나무와 같은 맥락이다.
바다를 터전으로 삼았던 군곡리 사람들은 해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비, 바람 등 자연현상에 대한 외경심과 두려움이 매우 강했고 농사의 결과도 하늘의 뜻에 의해 좌우된다고 믿었다. 따라서 천신에 대한 제의식은 마을을 유지하는데 가장 큰 몫을 했다.
해남 마한유적지마다
제의식 흔적 발견
마한인들의 제의식 관련 유적은 해남 곳곳에서 발굴되고 있다. 삼산면 신금마을, 현산면 분토리 유적에서도 나무를 세웠던 입주혈이 발견됐고 화산면 안호리 집단 묘지 발굴현장에서도 나무를 세운 구멍이 확인됐다. 현재 발굴이 한창인 현산면 읍호리 백제시대 무덤 군락지에서도 나무를 세운 흔적이 나왔다. 마한시대 행해졌던 신앙체계가 백제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해남에서 마한시대 제례의식 관련 터가 발굴되면서 마한역사가 문화사영역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이와 관련 지난 9~10일 열린 ‘해남 현산에서 깃든 마한소국 국제학술세미나’에서도 ‘현산일원의 마한 입주의례(立柱儀禮)’ 주제발표가 있었다.
대한문화재연구원 한옥민 연구원은 “삼국지 위서동이전에 나오는 소도의 풍광 같은 입대목(立大木)의례와 일치하는 고고자료가 현산 일원 4개 유적 모두에서 나왔다”며 “마한의례의 공통분모는 하늘의 뜻을 알고자 했던 입주의례이고 이는 삶과 죽음의 공간에서 모두 치러진 성스러운 의식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입주의례란 하늘로 향하는 높은 나무기둥을 세워놓고 일정한 의식을 행하는 것이다. 의식은 개인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기도 하고 죽음의 공간에서는 저승으로의 안내와 영혼의 평온을 기원하는 매개체였다. 영혼의 전달자로 알려진 솟대와 같은 기물의 단초가 입주물이라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마한인들은 새를 신성시했다. 인간과 신을 연결하는 매개체로 인식했던 것이다. 따라서 기둥 끝에 새긴 새 형상에 이어 새모양의 토기도 제작했다. 새모양의 조형토기는 송지면 군곡리에서도 발견됐다.
영산강 유역에서 주로 발굴되고 있는 새모양 토기는 광주 신창동, 전북 익산 등에서 출토됐다. 또 제례의식에 사용했을 청동거울도 군곡리에서 출토됐다.
한편 마한시대 성행했던 솟대신앙은 지금도 황산면 송호리와 송지 금강마을에서 이어지고 있다. 또 강강술래는 유네스코에 등재된 해남 대표적인 민속놀이이다.
박영자 기자/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