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정원 때문에 더 걷고 싶은 서쪽 땅끝마을

2022-06-28     이정순/화원미술관 관장
이정순(화원미술관 관장)

 

 화원면 매월리 매계마을 끝집에 10여 년 전에 서울에서 살다가 어릴 때 떠난 고향으로 돌아와 사는 아저씨가 살고 있다. 
 아저씨가 오기 전 그곳은 동네 끝자락의 잡풀 속에 묘지가 있는 평범한 언덕이었다. 그 언덕에 노란 집이 들어서고 10여 년이 지난 지금 그 언덕은 작은 공원이 됐다.
 어느 날에 보면 바닷가에서 주워온 돌이 갖가지 형상을 갖춘 돌탑이 돼 있고, 떠내려온 색색의 부표는 빨랫줄에 매달려 설치미술의 한 작품이 돼 있다. 부모님 무덤가에는 철 따라 예쁜 꽃과 잘 가꾼 잔디가 아름답다.
 잡초가 엉성하던 빈 밭은 고랑을 지어 온갖 곡식과 푸성귀로 풍성하다. 고랑 끝 사이 사이에는 여느 밭과는 다르게 작은 돌탑들이 조개껍질을 머리에 이고 울타리를 대신하고 줄을 지어 서 있어 미소가 지어진다. 
 그 모든 울력을 아저씨 혼자서 맨손으로 이루어낸 것이다.
 아저씨 집을 지나 바닷가 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파란 바다를 배경으로 색색의 분홍을 층층으로 곱게 단장한 집이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 보면 그 집은 참 이상하고 재미있다. 지붕에는 검은 고양이 하얀 고양이가 나를 반기고 벽을 타고 내려오는 얼룩 고양이도 있다. 담 아래에는 그 고양이를 노려보는 큰 개가 자리 잡고 있다.
 마당에는 빨간 홍학들이 줄지어 꽃밭 사이에서 무리 지어 있다. 분홍 돼지들은 마당에서 뛰어놀고 있고 마당 가 철봉에는 색색의 세 마리 고양이가 매달려 묘기를 부리고 있다.
 그뿐인가 코끼리들이 앙증맞은 모습으로 울타리에 일렬로 줄지어 있고 파란색 천막을 덮은 하우스 지붕에는 갖가지 바다 생물들이 천막 천을 바닷물 삼아 노닐고 있다.
 그런데 그 모든 형상이 다 손으로 만든 조각품들이다. 
 부산에서 4년쯤 전에 이곳에 이주해온 분이 매일매일 천천히 그 일들을 하고 있다.
처음 일 년은 저분이 무얼 하나 의아했고 그다음 해는 하고자 하는 일에 고개가 끄덕여졌고 삼 년쯤 지나서는 많이 고생한다 싶었고, 지금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 계십니다, 진심으로 말하며 그 사람의 왕국을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즐긴다.
 다음으로 내 산책길의 마지막 정착지는 해피하우스라고 작은 명패를 붙인 비탈길을 적당히 구획 지어서 잔디를 가꾸고 꽃과 나무를 심어놓은 아주 작은 공원이다.
한 바퀴 돌고 흰 벤치에 앉아서 바닷물로 들어가는 커다란 태양을 배웅하며 나의 하루가 이처럼 아름다울 수 있음을 감사드린다.
 프랑스의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그의 소설「개미」에서 개미의 입을 통해 예술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인간이 하는 많은 일 중에서 꼭 필요해서 하는 일이 아닌, 하지 않아도 되는 일, 그 일이 예술이라고 정의한다. 
 그런데 인간이 이 지구상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조직적인 생물이며 수적으로 우세한 그래서 지구의 주인이 돼야 했던 개미들을 제치고 지구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건 바로 그 예술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오직 하고 싶어서 몰두하는 그 정신, 그 정신이 바로 모든 창조의 바탕이 돼 지구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는 정의다.
 혹자는 말한다. 음악은, 예술은, 인간이 신을 향하고자 하는 동경의 몸짓이라고,
신을 향하고자 하는 그 마음은 각자의 자리에서 선하고 아름답게 살고자 하는 기도 같은 것이리라.
 쇼팽의 최상의 피아노 선율이 아니더라도, 미켈란젤로의 위대한 걸작 ‘천지 창조’ 같은 그림이 아니더라도 시골 한 모퉁이에서 천천히, 조용히, 하지 않아도 되는 그 예술이 재미있어서, 행복해져서, 그리고 삶의 원동력이 돼 준다면 그 앞을 지나는 내가 덩달아 눈이 즐거울 수 있다면, 우리는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예술을 통해 신에게 조금 다가가는 일이 될 것이며 지구의 주인으로 지구를 사랑하는 존재로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