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뿌리깊은 해남이야기 14 | 녹우당의 삼개옥문 적선지가 이야기
삼개옥문(三開獄門) 적선지가(積善之家)는 녹우당으로 상징되는 해남윤씨 가문을 가리키는 문장이다. 해남윤씨의 족보에 그 사연이 나온다.
‘이때 큰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세미를 내지 못하여 옥에 갇히는 무리들이 많아 감옥이 가득찼다. 이에 효정공이 미곡을 내어 관부에 대신 바쳐 이들을 풀어 주었는데, 이렇게 하기를 세번이나 하여 삼개옥문이라 칭하였다.(정윤섭, 녹우당, 열화당)’
윤덕희는 자화상으로 널리 알려진 공재 윤두서의 아들이다. 윤덕희가 남긴 공재 행장(국립광주박물관)에 아버지 윤두서의 선행이 담겨있다.
‘윤두서가 어머니의 부름을 받았다. 어머니는 해남에 가서 묵은 빚을 받아 오라 명했다. 빚이 수천 냥이 넘었다. 그러나 빚을 진 사람들이 모두 가난하여 갚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이를 불쌍히 여긴 윤두서는 채권문서를 모두 불태워버렸다. 이 일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윤두서의 덕을 칭송했다.’
채권을 불태워서 빚을 탕감해준 윤두서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내딛는다. 해일로 곡식을 모두 잃어버린 주민들을 설득하고 관의 협조를 얻어 살길을 열어준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해. 해일이 일어 곡식은 떠내려가고 들판은 벌겋게 황톳물로 물들었다. 관에서 구제에 나섰으나 역부족이었다. 윤두서는 주민들을 불러 모았다. 산에 나무를 베어 소금을 굽게했다. 이로써 굶어 죽거나 떠도는 이가 없게 되었다. 한 마을 수백호가 살아났다.’
해남 녹우당은 경주 최부자, 구례 운조루와 함께 조선을 대표하는 양반가 부잣집으로 알려져 있다. 수백년 동안 주민들과 함께했던 이들 명문가문에는 전해오는 미담도 많다. 녹우당의 아름다운 문화와 전통은 한국인 모두의 자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