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 가치가 요구되는 사회

2022-11-22     박병두/인송문학촌 토문재 촌장
박병두/인송문학촌 토문재 촌장

 

 저물어 가는 가을에 필자가 사는 땅끝마을에는 사람들의 일손이 부족하다. 허기진 삶들이 메아리를 친다. 작으나마 할 수 있는 일이 미약해 당황스러운 시간이 지나간다. ‘물가가 고공행진으로 오르는데 월급은 그대로네….’ 이런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시가 있다. 바로 김기택의 <밥 생각>이다. 
김기택 詩人은 현대인의 본질적인 내적 갈등을 시적 상상력을 발휘해 섬세하게 표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차가운 바람 퇴근길 더디 오는 버스 어둡고 긴 거리/희고 둥근 한 그릇 밥을 생각한다/텅 비어 쭈글쭈글해진 위장을 탱탱하게 펴줄 밥/꾸룩꾸룩 소리 나는 배를 부드럽게 만져줄 밥/춥고 음침한 뱃속을 따뜻하게 데워줄 밥/잡생각들을 말끔하게 치워버려주고/깨끗해진 머릿속에 단정하게 들어오는/하얀 사기그릇 하얀 김 하얀 밥/머리 가득 밥 생각 마음 가득 밥 생각/밥 생각으로 점점 배불러지는 밥 생각/한 그릇 밥처럼 환해지고 동그래지는 얼굴/그러나 밥을 먹고 나면 배가 든든해지면/다시 난폭하게 밀려들어 올 오만가지 잡생각/머릿속이 뚱뚱해지면 지저분해지면/멀리 아주 멀리 사라져버릴 밥 생각” 
이 시에서 시인은 ‘육체’에 주목하고 있다. 이 시에서 화자는 퇴근길에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배가 고픈 상태이다. 버스가 늦게 오는 가운데 화자의 허기는 갈수록 커진다. 이 시의 후반부인 ‘그러나 밥을 먹고 나면 배가 든든해지면/다시 난폭하게 밀려들어 올 오만가지 잡생각/머릿속이 뚱뚱해지면 지저분해지면/멀리 아주 멀리 사라져버릴 밥 생각’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육체가 정신을 지배한다. 
시인은 우리의 육체가 존재하는 것은 정신적인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물질성에 의해서 규정된다고, 즉 도시인의 삶의 본질을 꿰뚫은 것이다. 이 시를 쓸 당시에 시인은 식품회사에서 월급쟁이 생활을 했다. 매일매일 새로운 상품을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려고 기획하는 식품회사의 특성상 그의 생활은 샐러리맨의 전형인 셈이다. 김기택 시인은 자신의 삶의 체험을 밑바탕으로 자아 탐구를 한 것이다. 물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두툼한 월급봉투를 받는 유능한 샐러리맨이 되려면, 매일 새로운 정보나 생각을 받아들이며 몸값을 높여야 한다. ‘밥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뱃속이 든든해지려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것이 바로 샐러리맨의 일상이다.
문단에서 현대인에 대한 관심은 끊임없이 있어 왔지만, 김기택의 현대인에 대한 관심은 육체에 대한 탈인간주의적 관심이다. 시인의 육체적 유물론은 세계가 완결된 물질적 인간관계로 설명되는 기계적 유물론이나, 마르크스적 변증법 혹은 역사적 유물론과는 다르다. ‘그의 육체의 유물론은 인간주의적 인식의 허위를 벗겨내는 탈인간주의적 유물론에 가깝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1770~1831)은 인간은 ‘정신과 물질의 역동적 관계’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정신과 물질이 모두 배부르기 위해서는 주어진 삶에서 최선을 다하면 되겠지만 현실은 고환율, 고금리로 위기의 시대를 맞고 있다. 인기정책과 퍼주기 정책은 더 이상 나와서는 안 된다. 정치권은 이태원 참사로 책임 공방을 넘어 정쟁에 몰입하고 있고 재발방지 대책이란 명목으로 국민을 불안하게 한다. 
무당의 나라처럼 소란스럽고 조금도 양보를 찾을 수 없는 황량한 쓸쓸한 계절이다. 정신의 가치를 안고 사는 사람들에게 물질적 가치의 현실은 매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의 물질적 풍요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의 가치를 더 중요시하는 우리 사회를 만들지 못하면 미래는 없을 것이다. 
모두가 무한한 책임감으로 누구의 탓으로 돌리기보다는 사색과 성찰의 거울로, 우리 주변을 나직하게 응시해 보자. 오늘은 주위에 허기진 직장 동료가 있다면,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 보자. ‘오늘 퇴근길에 밥이나 같이 먹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