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마을 ‘겨울바다’에서

2022-12-20     박병두/인송문학촌 토문재 촌장
박병두(인송문학촌 토문재 촌장)

 

 경제가 바닥을 치고 있을 정도로 위기의 대한민국의 모습을 만나고 있다. 3고의 시대인 것이다. 서민들의 고충이 이만저만 아니다. 화물연대파업과 철도파업은 정부의 강경책으로 안정화를 이룬 듯, 하지만 근본적인 나약한 정신문화는 방법이 없어 보인다. 
출산장려책으로 아이를 낳으면 축하금 몇천만 원을 주겠다는 사탕발림으로 흔드는 것도 약발이 떨어져 결국은 한계에 부딪힐 날도 멀지 않다. 지자체들이 전국적으로 경쟁을 벌이듯 돈다발을 흔들어도 세계 꼴찌의 출산율 속에서 자치단체끼리 제로섬 게임을 벌이고 있는 ‘인구 찢어먹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을 고려해 보면 생활 안정화는 만만치 않은 일이다. 경제가 성장해도 고용 사정이 악화하는 실정인데 올해는 성장 전망치도 더 낮다. 유로존 위기로 인한 글로벌 경기둔화 여파로 고용시장에 한파가 불어 닥칠 가능성은 이미 찾아왔다. 제조업 부문에서 일자리가 연속 감소세를 보인다. 실업률은 여전히 높지만 일자리는 있지만 힘겨운 직업군은 가지 않으려 한 지 오래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물가가 오르고 있으니 힘겨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겨울 한파처럼 매섭게 느껴지는 물가의 칼바람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여럿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는 따뜻한 봄날을 기다리며 겨울 한파 속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사람들도 많다. 황동규의 시 ‘겨울바다’를 읽으면 그런 사람들과 만날 수 있다. 
“薄明의 구름장들이 빙빙 돌아간다/ 고통처럼 단순한 몇 포기 섬들이/ 갯벌에는 여인 서넛이/ 소주처럼 쓴 물결을 휘젓는 바람 소리가/ 아 바람이, 하늘에선 박명의 구름장들이 빙빙 돌아간다/ 웅크리고 박혀 있는 몇 포기 섬들/ 갯벌에는 여인 서넛이/ 허리 구부릴 때 그네들에게 잡혀주는 몇 마리 게새끼가/ 매어 달리는 이 풍경/ 아 바람이,/ 짧은 해안선을 짧게 달구는/ 풀뭇불빛 같은 이 풍경.” 
‘겨울바다’에서 황동규 시인이 바라본 섬에는 갯벌에서 게를 잡는 여인들이 등장한다. 유추하건대 시인이 바라본 바다는 서해안 같다. 갯벌이 있고 그 섬이 그 섬 같은 섬 들… 서로 비슷하게 생긴 섬들이 나오니까. 
그런데 시인이 바라보는 바다의 이미지는 씁쓸하다. ‘겨울바다’에 나타난 바다는 가슴을 확 트이게 해줄 만큼 넓은 바다도 아니고 여인들의 모습도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물가 때문에 어깨가 축 처진 우리네처럼 여인들의 모습 역시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겨울바다’를 한 번 더 읽어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섬을 닮은 여인들이 게를 잡을 때의 풍경은 생산적인 것이다. 소주 한잔 마시며 삶이 밝아지기를 희미하게 기약하는 우리의 고군분투와 흡사하다. 그래서 나는 황동규의 시에 등장하는 ‘겨울바다’에 안장해 있다. 
우리는 흔히 가슴 답답한 일을 겪을 때 한 번쯤 바다를 찾는다. 필자는 매일 같이 바다와 노을을 보고 산다. 도심지에서 상상하기만 해도 위로가 되겠지만 눈에 보이는 바다와 접점을 찾아 만나기보다는 마음의 경으로, 바다와 산을 곁에 두면 좋겠다. 
오늘은 땅끝에도 눈발이 날린다. 
노을빛에 잔잔히 숨을 고르는 것 같은 파도의 움직임을 보노라면, 새근새근 잠들라고 토닥여주는 그 어릴 적 어머니의 손길 같다. 
황동규의 ‘겨울바다’를 읽으며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을 느끼고, 겨울밤, 황토 고구마를 놓고 어려운 삶을 잠시 밀쳐놓고 옛이야기로 밤을 보내자, 두 해를 맞는 땅끝마을의 겨울은 풍경소리와 닮았다.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해남의 자연과 땅에서 쉬었다 가지 않고, 오래도록 머물다가는 쉼터로, 해남 사람들이 친절하고 따스하게 마련해 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