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줍는 할머니…탄소중립의 공익적 역할에 주목해 주세요

폐지줍는 어르신 18명, 그중 80세 이상이 11명이다. 하루 수입 9,000원. 밥 한끼값도 되지 않지만 그건 속세의 계산법이다. 아무렇지 않게 버려지는 거리의 돈을 수거하는 것이다.

2023-01-20     김유성 기자

 

90세 조인애 할머니가 가득 채운 폐지를 싣고 고물상을 향하고 있다. 폐지는 그녀의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원천이자 사회구성원으로서 세상과 만나는 행복한 일자리이다. 

 

 나이 90세, 할머니는 여전히 리어커를 끌며 폐지를 줍는다. 폐지 kg당 90원, 하루종일 줍고 모으면 100kg이다. 하루 9,000원 정도의 수입. 하루도 쉬지 않고 폐지를 모으면 월 27만원이다. 한끼 식사 1만원 시대, 종일 폐지를 모아도 한끼 식사도 안 되는 폐지수집을 할머니는 왜 그토록 고집할까.   
해남에서 폐지를 줍는 이들은 총 18명, 이중 80세 이상이 11명, 90세 이상도 3명이나 된다. 최고령자는 95세. 

 오늘도 90세 할머니는 리어커를 끌고 해남읍내를 다닌다. 그 모습이 너무도 당당하다.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왜 이 일을 하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기후변화 위기로 폐지 자체는 지구의 온도를 낮추는 탄소중립에 있어 매우 중요한 몫을 한다. 그러한 중요한 몫을, 할머니가 이야기 할리는 없다. 대신 돈이 도로에 버려진다는 것 자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폐지 줍는 일은 당신 나름의 가치이자 일자리라는 것이다.    

 90세 할머니가 처음 폐지를 수집하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에서다. 늘 다니던 교회에서 종이박스가 다량으로 나오는데 그냥 버리는 것이 너무 아까워 고물상에 갔다 줬더니 1,000원짜리 지폐 한 장이 손에 들려졌다. ‘쓰레기가 돈이 되네’ 새로운 세상의 발견이었다. 골목이나 도로변에 버려진 종이가 모두 돈이라는 사실, 그때부터 할머니는 자신의 집으로 오가는 길목에 쌓인 종이박스와 깡통, 신문지들도 줍기 시작했다. 조그만 손수레를 채운 폐지들은 금방 집안 마당에 가득 쌓였다. 고물을 줍는 것에 부끄러움은 없었다. 돈인데 그냥 버려지는 것이 죄스러웠다.
그렇게 폐지수집을 시작한 지 10년이 지났다. 

 할머니는 한 달에 얼마를 버는지 정확히 계산한 적이 없다. 그냥 거리에 버려지는 돈들이 아깝기에 줍고 또 줍는다. 또 그렇게 번 돈의 가치의 크기를 알기에 속세의 계산법을 따르지 않은 지도 오래다. 

 읍내에 나가면 숱하게 널린 종이박스들, 그 돈을 그대로 버린다는 것은 할머니의 사고에선 받아들이기 쉽지 않는 세계다. 하루 얼마의 돈을 버는 것이 아닌 돈이 길에서 버려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할머니가 길에서 터득한 삶이었던 것이다.
노동시장의 가장 약자로만 여겨지는 폐지 줍는 삶, 물론 요즘같이 환경문제가 대두되면서 공공적 가치를 부여하는 직업으로 여겨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지만 할머니는 당신의 방식대로 폐지의 가치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해남읍에서 폐지를 줍는 90세 할머니 조인애(가명)씨, 90세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정하다. 100kg 가득 채운 리어카를 하루 한번 해남군청에서 대흥사사거리까지 끈다. 
“옛날에는 진짜 줍고 다닐만했지. 아니 불과 2년 전만해도 엄청 재미가 좋았어. kg당 1만5,000원까지 줬거든. 기운이 펄펄 나서 하루에 2번씩 리어카를 가득 채우고 고물상을 찾아갔어. 하루 3만원 이상 수입을 올린 적도 있지”라며 웃어 보였다. 
그런데 2021년 12월 kg당 153원이던 폐지 가격이 지난해 12월에는 85원, 1년 새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가정이나 고물상에 모인 폐지는 압축장을 거쳐 제지공장이나 해외로 나간다. 문제는 코로나가 끝나는 시점을 대비해 대량으로 사들인 폐지가 불황이 지속되면서 수출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갈 곳 없는 폐지가 20만톤을 넘고 있다. 
그래도 할머니는 폐지 줍는 일을 고집한다. 돈의 크기를 떠나 모두 돈이기에.  

 할머니는 폐지를 주우면서 힘든 일은 없다고 한다. 그런데 항상 밝고 건강한 조인애 할머니에게도 피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자신이 하던 일을 자식들에게 들통이 나 버린 것이다. 
타지에 나가 있던 아이들이 갑작스레 집을 방문하게 됐는데 미처 폐지가 담긴 수레를 감추지 못한 것이다. 그 어떤 자식이 어머니가 폐지를 줍는 것을 좋아할까. 그날 자식들에게 된통 혼이 났다. 아이들의 반대에도 폐지수집은 계속됐고 결국에야 자식들이 ‘건강을 생각해서 조금씩만 하라’는 암묵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하루일과는 물리치료를 받으며 동네 노인들과 수다를 나누는 것이다. 
조인애 할머니는 “폐지를 팔아 번 돈으로 생활비도 쓰고 치료도 받으러 다니고 지금의 생활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또 오며 가며 만나는 폐지수집 노인들과 인사를 나누고 자신이 줍지 못한 폐지가 있으면 서로 연락해 알려주기도 한다. 과거 무릎을 수술하면서 걷기가 불편했지만, 지금은 생활하는데 아무 지장도 없단다.
“내 나이가 90에 아직도 리어카 끄는데 아직 불편이 없어. 오히려 내 친구들은 요양원에 누워있거나 대부분 하늘나라로 가버렸지. 그냥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서 동네 한바퀴 돌고 또 그렇게 모인 쓰레기가 돈도 되는데, 얼마나 좋아”
얼마 전 병원에서 받은 종합검진도 작년보다 더 건강해졌다는 말에 더 기운이 난단다.

 가난의 상징으로만 여겼던 폐지 줍는 삶, 기후변화 위기에서 이들에 대한 평가를 단지 폐지 판매 수익보단 탄소중립의 가격으로 이해해야 한다.
해남에서 활동하는 폐지수집 노인들은 모두 18명, 100kg씩 계산해도 그들이 하루에 모으는 쓰레기량은 1,800kg에 달한다. 폐지가 재활용이 됐을 때 감소하는 탄소 배출량을 생각하면 경제적 가치는 무시하기 힘들다. 
그러나 여전히 이들은 제도권 밖의 비 직업인이다. 이제는 이들을 빈곤의 상징이 아닌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일원으로 바라봐야 한다. 또 어떻게 더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고민도 필요하다. 
새벽 교통사고 사망 통계에서 폐지수집 노인들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에 형광조끼와 같은 안전에 대한 조치가 시행됐다. 또 버스와 택시에만 부착하는 공익적 광고를 폐지 줍는 리어카까지 확대하는 지자체도 있다. 
더디지만 서서히 이들의 가치를 공익적으로 바라보고 접근하는 세상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