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2023-02-20     박병두/인송문학촌 토문재 촌장
박병두/인송문학촌 토문재 촌장

 

 박태경은 내 조카이다. 그러니까 고향 해남에서 인삼밭을 경작하고 있는 작은 형의 아들이다. 논산훈련소를 시작으로 병영을 마친 뒤 오래전 전역한 조카의 기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그 옛날 조카를 면회 가는 열차에서 어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났었다. 아마, 아버지인 작은형의 옛날 군대 시절이 생각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울러, 어머님이 서울에서 기사식당을 하던 일과 그 시절, 누나와 함께 기사들이 식사하는 동안 세차하던 곤궁했던 집안 형편이 기억돼 슬퍼졌다. 
작은형은 집안에서 ‘삐틀’이라고 했다. 왜 작은형을 ‘삐틀’이라고 놀려 댔는지는 알 수 없다. 내 기억으로는 착한 심성을 가진 형의 얼굴 때문이었을 게다. 그때, 형은 강원도 최전방 화천에서 복무하다 첫 휴가를 나왔다.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얼굴은 새까맣고 기미가 마치 얼굴이 얽은 것처럼 여기저기 검버섯처럼 깔려 있었다. 몸뚱이는 깡말라 흐느적거렸고, 전신은 맥아리가 하나도 없어 보였다. 그러한 형을 따뜻하게 맞이해 줄 집안 형편이 못됐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우리 가족들은 서울로 상경해 시골의 재산을 정리한 돈으로 기사식당을 하다가 어머니가 병석에 들자 진퇴양난의 환경이 됐을 때였다. 
처음 시작한 기사식당은 1년간은 매출이 좋았다. 손님들도 어머님의 손맛보다는 짙은 인간애와 따스한 향수 덕에 기사식당으로 발길을 돌렸을 것이다. 2년이 돼갔을까, 식당 앞으로 고가 도로공사가 시작됐다. 당초 이런 사전정보가 없이 식당을 인수한 아버지의 잘못이었다. 나는 공부를 계속할 마음이나 경제적인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취업을 준비 중이었다. 아버지는 모든 것을 팽개치고 외지로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었고, 병석의 어머니는 여러 차례의 수술 끝에 병석에서 일어나시지도 못했다.
작은형이 휴가를 나왔지만, 수입은커녕 빚만 더욱 불어나는 마당에 이곳저곳 돌아다니고 싶어 할 형에게 교통비조차 쥐어줄 형편이 아니었다. 이러한 형편을 금세 알아챈 작은 형은 두문불출하고 구석방에서 휴가 기간을 보냈다. 워낙 효심이 지극한 형이라 불평이나 불만을 토로하지 않고, 부대로 귀대하게 됐다. 귀대하던 날, 떡이라도 좀 해 가서 부대원들과 나눠 먹어야 도리인데 그렇지를 못했다. 그나마 교통비나마 마련해준 것이 다행이라 할 정도였다.
태경이는 이렇게 힘겨웠던 아버지 시절을 알 길이 없다. 나는 어린 시절 건강하고 착하게 자라던 조카를 4학년 때 포경수술을 해 줄 정도로 사랑했다. 
그런데, 아이가 대학교에 들어가자 전혀 다른 아이로 변모해 갔다. 술도 마시고 친구들이 많은 탓에 말썽을 자주 피웠다. 녀석이 동수원병원에 누워 죽을 고비를 넘겼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작은형의 속이 까맣게 탔을 것이다. 
반면 형수는 태평성대였다. 병원응급실에 누운 조카의 상황을 알 수 없었던 터라 “대학생이 양주를 마시면 어쩌냐?”는 나의 힐난에 “학생들이라 그럴 수 있죠 뭐”하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셨다. 농업대학에 다녔던 관계로 정식 군복무를 하지 않아도 되는 신분이었다. 그러나 나와 작은형은 합의 끝에 태경이를 정규 군대에 보내 사람을 만들고자 했다.
“충성!” 거수경례를 하는 태경이를 보니, 씩씩하고 늠름해 보였다. 남아다운 기상이 어려 있었다. 술이나 마시고 싸움질이나 하던, 그런 모습은 모두 싹 없어져 버린 조카의 모습이 든든했다. 전역하고 수원집 관사로 찾아온 전역병들과 하룻밤을 보내고 조카는 다음 날, 해남집으로 귀가했다.
결혼과 인연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고, 자신의 성실한 삶과 행동의 변화에 따라 인연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정직하게 살려 하지만 정직하게 살 수 없는 세상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정직하지 못한 연유로 제 3자가 상처를 받고 피해를 보았다면 책임지고 인정하는 태도를 취해야 하는 것이라고, 어떤 일이 있어도 신문을 보는 규칙적인 삶의 질서를 이루라고, 그렇게 외마디로 강조한 시간들이 지나가고 이제 조카는 의젓한 가장의 모습으로 성장했다. 
계획없이 귀향한 탓에 내 인생의 서툰 길은 지난 여정을 끝내고, 새로운 낯선 여행이 다시 시작되고 있으니 어쩌랴! 다양한 사람들과 마주 보는 저녁노을이 더 아름다운 것은 세상사 인연을 좀 더 멀리하고 보는 허허로움의 다름일 것이다. 이제는 농민의 삶으로 안장한 조카를 위해 응원할 뿐, 내게는 언제나 더 없는 소중한 조카다. “사랑한다, 태경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