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제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친 교사였을까

2023-05-08     임일도/전)재광주해남군향우회 회장
임일도/전)재광주해남군향우회장

 

 필자의 직업은 교원이었다. 그래서 매년 5월15일 스승의 날은 교원으로서의 길을 잘 가고 있는지 뒤돌아보고 성찰하는 시간이었다. 해가 갈수록, 스승도 제자도 없어져 감을 개탄하는 사회풍조에 매우 마음이 무거운 날이기도 했다. 
이제 정년퇴임을 했으니 교원이 아닌 일반인으로서, 나의 진로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선생님을 생각해본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영향을 끼친 선생님이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주신 분은 해남중학교 2~3학년 때 역사와 사회를 가르치신 최재근 선생님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나는 14~5세였고 선생님은 40세 정도의 평교사였다. 선생님은 나의 담임을 하신적도 없고, 진로를 상담하신 적도 없으며 단둘이 대화를 해본 적도 없었다. 다만 2년 동안 수업시간에 우리를 가르치셨던 인연뿐이다. 그런데 수업시간에 하신 한마디 한마디 말씀이 감수성이 예민한 14~15세의 소년에게 매우 감명 깊었고 유익했다. 3학년 1학기 수업시간에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선생님께서 강의하시다가 갑자기 “에베레스트산이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이 되었냐?”고 질문하셨다. 나는 생각지도 않고 즉흥적으로 “에베레스트산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것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히말리야 산맥에 있기 때문입니다” 라고 대답했더니 선생님은 반기시며 “명답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우리들에게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고등학교 좋은 대학에 진학해서 거기서 조금만 두각을 나타내면 우리나라뿐 아니라 나아가 세계에서 제일가는 사람이 된다”고 하시면서 이것을 에베레스트산과 히말리야 산맥과의 관계로 비교해 설명하신 것이다. 2년 동안 국사나 세계사, 사회 수업시간에 강의하신 역사적 사건이나 흐름, 역사적 인물(예를 들어, 청년 이토오 히로부미의 영국 유학시절 체험담 등) 또는 사회구조와 규범 등에 대한 강의는 하나하나가 흥미롭고 감명 깊었다. 지금도 누가 나에게 제일 좋아하는 과목을 묻는다면 역사와 사회를 꼽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역사와 사회를 좋아해서 최 선생님을 좋아했는지, 아니면 최 선생님을 좋아해서 역사와 사회를 좋아했는지는 구분하기 어렵다. 이분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이후 고등학교에서는 인문계였고, 대학진학 때 학과선택이나 대학원에서의 전공, 그리고 직장에서의 강의과목이 모두 이와 관련이 있었다. 다만, 히말리야 산맥에 올라가는 것은 실패했다. 
해남중학교를 졸업하고 40년이 흐른 뒤, 나는 최재근 선생님을 꼭 한번 뵙고 싶어 거처를 수소문해 집 전화를 알아냈다. 선생님은 그동안 시골의 어느 중‧고등학교에서 교사 교감 교장선생님으로 봉직하시다가 정년 퇴임하시고 그때 광주 임동에 살고 계셨는데 연세는 80세 정도였다. 그해 스승의 날에 즈음해 조심스럽게 선생님에게 전화해, 40년 전의 해남중학교 제자라며 이름을 말했으나 기억하시지는 못했다. 다음날 점심식사를 같이하기로 약속하고 조그마한 선물도 준비해 40년 만에 처음 만났다. 나는 80세의 노은사님께 40년 전의 중학교시절 이야기를 하며 “선생님은 저의 진로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신분이라 꼭 한번 뵙고 싶었습니다” 라고 했더니, 선생님은 상기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내가 40년 가까이 교직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제자를 배출했지만, 자네 같은 제자는 없었네. 내 교직 인생에서 오늘이 제일 기쁘고 뜻 깊은 날이네” 라고 하시며 매우 기뻐하셨다. 그 후 두 번 정도 만났지만 더이상 만날 수 없는 분이 됐다. 
돌이켜 보면, 교원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제자들의 인생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영향을 많이 준다. 그래서 가르치는 사람은 항상 말과 행동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금년에도 5월15일 스승의 날이 다가오니 중학교 시절 최 선생님이 생각난다. 그리고 정년퇴임을 한 지금, 나는 과거에 어떠했을까? 지식만 전달하는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지식의 전달뿐 아니라 제자들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주었던 사람이었을까? 자꾸 뒤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