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봄, 소리 없는 아우성
묘한 봄날이었다. 짙뿌연 안개 속에 더 화려하게 번지는 색색의 꽃들이 소리없는 아우성으로 피어나는데, 미세먼지 최악이라며 경보만 요란하게 울렸다. 이 정도 피면 벌 소리가 붕붕 나야는데, 올핸 벌이 없어도 너무 없다. 같이 새를 보러 다니는 언니들도 요즘 한창 짝짓기 철이라 새소리 듣기 좋은 때인데, 갑자기 새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벌도 새소리도 없는 오싹한 침묵의 봄.
코로나로 잠시 멈췄던 재작년 봄은 정말 오랜만에 미세먼지 없는 봄이었는데, 작년 하반기부터 코로나도 익숙해지고 전 지구 공장이 재가동 되면서 하늘은 다시 뿌옇게 흐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봄날 따뜻해진 바닷물이 피워 올리는 해무, 바다안개라고만 여겼는데, 애도 나도 계속 눈꼽끼고 간지럽고, 한달 내내 기침을 해댔다. 요상하게 열은 없고, 한달 넘게 약 먹어도 소용없고. 나중에 어린이집에서 온 안내장을 보니 ‘요즘 아이들 감기가 눈꼽 끼는 안과증상을 동반해 유행’하고 있단다. 전형적인 감기 바이러스가 아닌, 그야말로 이건 환경병 아닌가? 소아과는 초만원에 몇시간씩 지치도록 대기가 길었다. 어린이집도 한달 내내 돌아가며 감기에 안걸린 아이들이 없었다. 바깥에 꽃비는 흩날리는데, 우리집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는 이 꽃시절 밖을 나가지 못하니, 꽃사진을 프린터해 밟아보고 색종이를 잘게 찢어 붙이고 뿌리는 활동사진이 올라왔다.
십여년 전 강남 아이들이 봄을 이렇게 보내더라는 증언을 들으며 카더라 통신인가 싶도록 생경하고 그 아이들 참 불쌍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여기 꽃천지인 봄날에 도시도 아닌 땅끝 시골에 사는 우리 애가 그런 봄날을 보내고 있다니, 기가 막혔다.
이 봄날 아이들의 손끝이 만져야 할 것은 플라스틱 장난감도 동영상 화면 패드도 아닌데. 바로 이 얇고 푹신한 감촉을 먼저 느껴야 하는데!
꽃은 져 가는데 흩어져버리는 봄이 아깝고 초조해졌다. 다른 애들이라도 봄을 만나게 하자 싶어, 헐레벌떡 다시 꽃바구니를 챙겨 미황사 아래 작은학교에 꽃수업을 갔다.
그저 꽃잎을 만져보고 느껴보고 냄새 맡고, 동박새처럼 동백꽃 꿀도 쪽 빨아먹는데 어떤 친구는 맛있다고 계속 맛보고, 어떤 아이는 “우웩 이상해요, 퉤퉤” 자연물에 대한 익숙함과 낯설음의 차이일까? 아는 언니도 오랜만에 어른들 꽃체험 수업을 다녀왔는데 벌레부터 없냐고 묻더란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이 시골에서마저 다들 자연이 낯설어지고 있다. 지고 있는 동백꽃을 주워 아이들과 목걸이를 만들어 걸며 “자연에서 온 건 자연스럽게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거라서, 금방 색이 바래고 끊어질거야”라고 이야기는 해줬는데, 그래도 시들지 않는 색종이 꽃이 더 익숙하지 않을까?
지금 지천에 난 갓꽃들을 뜯어가 갓꽃화관도 만들어 걸고 왔다.
일교차가 15도 이상 나기도 해서 온풍기를 틀었던데, 이내 시들어 버리진 않았을까? 초라하게 축 쳐지진 않았을까? ‘자연은 저렇게 금방 초라해지는구나’하는 마음이 들면 어쩌지? 집에 돌아와서도 몇 번은 마음이 기웃기웃 떠나온 교실을 종종거린다.
미감이나 미각은 강요할 수 없는 각자의 자유다. 그건 어쩔 수 없다. 다만 최선을 다해서 더 온전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자연과의 어울림을 시도해야지.
벌써 플라스틱 장난감에 손끝이 완제품 과자에 혀끝이 익숙해져가는 내 아이를 온전한 한사람으로 기르기 위해서라도, 이 동네 아이들과 엄마들과 때마다 더 맘껏 힘껏 자연을 찾아내 맛보고 만지고 심으며 놀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