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뿌리깊은 해남이야기 28 | 춘전 김광호 선생의 삶을 돌아보다
지난 1월28일에 해남의 큰 대들보 하나가 쓰러졌다. 춘전 김광호 선생이 별세한 것이다. 선생의 삶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를 찾는데 선생이 해남읍 신안교를 세운 이야기가 눈길을 끌었다.
신안마을로 가자면 징검다리를 건너야 했던 시절에 해남읍교회 이준묵 목사와 해남YMCA청년들이 신안교 만들기에 나선 일이 있다. 당시 20대였던 청년 김광호 선생도 신안교 공사에 참여해 구슬땀을 흘렸다.
그런데 8년 뒤 신안교 다리가 태풍으로 유실되는 사고가 발생한다. 레미콘은 고사하고 리어카도 귀하던 시절 맨손으로 땀 흘려 세운 다리가 떠내려갔다는 소식에 김광호 선생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선생은 다시 나서기로 했다. 이번에는 전문공법을 동원해서 공사를 추진했다. 그 결과 튼튼한 다리가 탄생했다. 해남읍 주민들은 환호했다.
여기까지는 옛날 신문에 나오는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해남 최초 설계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던 선생이 신안교에 관심을 갖게되고 공사까지 맡게 된 것이리라. 눈길을 끄는 것은 그 다음의 내용이다. 신안교 재건축 공사비를 모두 김광호 선생이 사비로 충당했다는 이야기.
춘전 김광호 선생의 공적을 돌아볼 때 그가 신안교를 사비로 세운 이야기가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춘전 김광호의 삶과 “해남을 사랑하는 선생의 마음은 이것”이라고 보여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신안교 다리공사가 아닐까 생각되어지는 것이다.
春田 김광호 선생은 해남 26개에 이르는 사회단체 탄생에 함께했다. 그는 해남청년회의소, 해남군 축구협회, 해남로타리클럽, 해남군사회단체협의회 등을 창립했다. 해남종합사회복지관 초대 관장과 해남군의회 초대 의장도 역임했다. 해남신협 이사장과 해남군번영회장, 민주평통 해남군협의회 회장, 대한노인회 해남군지회장, 해남우리신문사 대표를 지냈다. 해남청년회의소(JC)가 선생의 회갑잔치를 열어주고 장례식까지 주관했다는 사실은 선생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