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뿌리깊은 해남이야기 29 | 희망원에 핀 김정길의 이웃사랑

2023-07-10     글.그림=김마루(향우, 웹툰작가)

 

 충청북도 음성에 있는 꽃동네는 한 신부가 지은 움막에서 시작됐다. 의지할 곳 없던 18명의 이웃을 수용하기 위한 움막, 사랑의 집이 세워진 것은 1976년의 일이다.
꽃동네보다 23년이나 앞선 1953년부터 집 없는 천사들을 품어온 해남 사람이 있었다. 그는 가마니로 움막 10동을 짓고 다리 밑에서 노숙하던 천사 53명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움막에서 함께 지내며 이들을 보살폈다. 
6·25 전란의 상흔이 채 아물지 않은 시기에, 끝없는 사랑과 헌신이 요구되는 가시밭길로 뛰어들었던 김정길. 그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1953년 당시, 그는 놀랍게도 해남고등학교 1학년에 다니던 17세의 학생이었다.
김정길은 집을 나와서 전쟁고아, 장애인, 정신질환자, 노약자와 숙식을 함께했다. 천사들에 대한 사회의 어두운 인식을 바꾸기 위해 해남읍내 시가지를 청소하게 하고, 거리에서 구두를 닦는 등 자립의지와 삶의 가치를 일깨웠다.
밤에는 문맹인 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하천가 1,000여평을 직접 개간해 자갈밭에 씨앗을 뿌리고 닭과 오리 같은 가축도 길렀다. 복지정책은 고사하고 복지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던 시절이었으므로 정부나 공공기관의 도움은 기대할 수 없었다.
‘천사회’라는 팻말을 단 천사들의 집에는 120명이나 되는 천사들이 전국에서 몰려들었으나, 그가 홀로 감당해야 하는 비인가 시설일 뿐이었다. 시련이 많았지만 김정길은 한결 같은 사랑을 쏟아부었다. 그렇게 30년이 흘러갔다.
1983년에는 부모에게서 받은 유산과 자신의 전 재산으로 2만5,000여 평 부지를 마련하고 부랑인 보호시설(희망원), 정신요양시설(선혜정신요양원), 노인전문요양시설(선희 노인요양원, 해남노인요양센터)등을 세웠다. 
이 시설들은 지금까지도 불우 이웃들의 포근하고 든든한 안식처가 되고 있다. 멀리 부산에서 청년 김정길을 찾아온 처녀 선생님의 이야기는 희망원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전설이다. 임숙재 선생의 이야기는 30회차 해남이야기에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