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앞에서 발생하는 현대판 골품제도

2023-07-27     송창영/광주대 건축과 교수
송창영
(광주대 건축과 교수)

 

 신분제도는 혈통과 혈연, 가문, 직장, 재산, 권력 등에 따라 특정 집단에 대해 특권을 부여하고, 이를 자손 대대로 세습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는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신라시대 골품제 역시 대표적인 신분제도이다. 
골품제도는 혈통에 따라 정치적인 출세가 제한되고, 나아가 전반적인 사회생활에서 특권과 제약이 구분되는 신분제도였다. 이러한 신분제도는 조선으로 이어져 양반과 중인, 평민, 천민으로 구분됐고, 약 500여 년 동안 유지돼 왔다. 그리고 갑오경장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에서 신분제도가 완벽히 사라졌다고 믿어 왔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신분제도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으며, 특히 재난분야에서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라는 저서를 통해, 현대사회는 ‘무수한 위험과 각종 재난 앞에 누구나 평등하게 노출된 시대’라고 정의했다. 재난은 항상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있으며, 지위나 빈부 격차와 관계없이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과연 대한민국은 지위나 빈부격차에 관계없이 위험 앞에서 평등하다고 할 수 있을까? 
개인의 신체적·정신적·경제적 능력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같은 규모의 위험을 직면하더라도,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은 개개인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이러한 측면에서 어린이와 노인, 장애인, 저소득층 등 ‘안전취약계층’으로 지칭되는 사람들은 재난이 발생했을 때 더 큰 피해를 입게 된다.
작년 수도권에 300mm가 넘는 폭우가 쏟아지면서 한강 이남지역을 중심으로 곳곳이 침수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폭우로 인해 교통이 마비되고, 일부 통신서비스가 마비되는 등 많은 시민들이 불편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당시 폭우로 인해 발생한 사망자의 대부분은 반지하에 거주하던 주민, 60대 이상의 노인 등 이른바‘안전취약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미국에서는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해 발생한 사망자의 71%가 60세 이상의 노인이었다는 점에서, 재난관리 측면에서의 ‘장애’의 개념을 아동과 고령자 등 재난취약계층을 모두 포함할 수 있도록 확대·정의했다. 
또한, 미국 연방재난관리청에 장애 조정 역할을 수행하도록 해, 내부에 장애인 재난관리 전담부서인 ‘장애통합조정실’을 설치하고, 실질적인 정책 수립과 현장 대응 및 조정·지원 기능을 담당하도록 개선했다. 
우리나라는 ‘행정안전부’에서 재난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재난대비·대응·복구 등에 필요한 전반적인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재난안전 총괄부처임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을 포함한 재난 취약계층을 위한 재난관리 전담부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대한민국 국민은 헌법 제34조 제6항에 따라 재해와 위험으로부터 국가의 보호를 받을 수 있으며, 동법 제34조 제5항에 따라 신체장애자 및 질병·노령 등의 취약계층에 대해서도 국가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국가에서는 법을 통해 안전취약계층을 지원할 수 있는 밑바탕을 마련하고, ‘취약계층 재난관리 전담부서’를 통해 적극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들은 이에 공감하고 적극적인 관심을 가짐으로써 ‘재난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라는 국가적·사회적 인식을 형성해야 한다.
국가와 국민 모두가 안전취약계층의 재난관리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위한 노력이 이뤄져야만 비로소 재난 앞에서 평등한 사회가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