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희미해지는 제헌절의 의미
지난 7월17일은 75주년 제헌절이었다. 제헌절은 국가의 최고법인 헌법을 제정한 날을 기념하는 우리나라 5대 국경일 중의 하나다.
헌법이란, “국가적 공동체의 존재 형태와 기본적 가치 질서에 관한 국민적 합의를 법 규범적인 논리체계로 정립한 국가의 기본법”을 말한다. 한 나라에 있어 헌법의 비중을 비유할 때 ‘교회에는 성경이 있고, 국가에는 헌법이 있다’고 비유한 것은 그만큼 권위 있고 신성한 규범이란 뜻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은 우리나라는 1945년 8‧15 광복을 맞이한지 3년 후인 1948년 7월17일 헌법을 만들어 공포하고, 이 헌법에 따라 같은 해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했다.
그 후 제헌절을 5대 국경일로 정하고 이날을 공휴일로 정해 기념해 왔는데, 2008년 법정 노동시간을 주 40시간으로 정하면서 제헌절을 공휴일에서 제외하고 기념식만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국민은 별 관심도 없고, 언론의 보도도 비중 있게 다루지 않는 등 제헌절의 의미가 해가 갈수록 희미해져 가는 것 같아 평소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다.
금년에는, 방송사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어떤 TV에서는 7월 초부터 자막으로 계속해서 제헌절에 태극기를 게양하자고 홍보했는데, 제헌절에 전국적으로 비가 많이 와서 국기를 게양하기가 어려웠다. 필자의 경우는 국기를 아파트 내부에 게양하고, 국회에서 거행하는 제헌절 기념행사를 TV로 보았다.
그날 국회의장이 기념사에서 일부 개헌을 제안했다. 대통령 임기를 4년 중임제로, 그리고 국무총리를 국회에서 복수 추천하자는 것,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을 폐지하자는 것.
이 3가지만 내년 총선 때 같이 국민투표에 부쳐 개헌을 하자는 것이다. 다 아는 내용이지만 그 내용을 좀 더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 그다음 날 아침 일찍 일간신문을 가져와 관련 기사를 찾아보았다.
필자가 수십 년 동안 구독하고 있는 중앙지 ㄱ 신문에는 제헌절 기념행사에 관해서는 단 한 줄의 글도 없었다. 물론 그날은 전국적인 물난리로 국민의 모든 관심은 물난리 상황을 시시각각으로 보고 있는 때였다. 그래서 그 신문의 28면 중 앞장 5면까지는 홍수 상황에 대한 보도였는데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6면부터 28면까지는 정치, 국제,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 사설 등으로 구성돼 다른 시시콜콜한 기사는 있는데 제헌절에 대한 기사는 단 한 줄도 없었다. 그렇치 않아도 해가 갈수록 제헌절의 의미가 희미해진 것 같아 안타까워하고 있는데 정말 씁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런 현상은 5대 국경일의 하나인 제헌절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다는 것이며, 이것이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현상이며, 무관심이 보편화됐다는 것을 반영한 듯해 더욱더 씁쓸했다.
헌법은 국가의 기본법이요 최고법으로서 헌법이 없이는 정부 수립도 국가 운영도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기본권보장 조항이다. 비유하자면 우리가 평소 공기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고 지내다, 정작 공기가 부족하다거나 나쁜 공기를 마시면 공기의 소중함을 알 듯, 우리는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의 혜택을 누릴 때는 헌법의 소중함을 잘 모르지만, 기본권이 침해됐거나 규정이 없어 이미 침해당하고 있을 때는 헌법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필자가 지금 이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헌법에 보장된 언론자유의 덕분이다.
이번 제헌절 기념식에서 국회의장이 제안한 일부 조항의 개헌안에 대해, 그 내용을 반대할 의사는 없다. 그리고 개헌이 어려우니까 우선 몇 개 조항이라도 바꿔보자는 의도에서 제안한 그 충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임시방편의 쉬운 개헌보다는 더 근본적으로 시급하고 중요한 전문, 총칙, 기본권, 경제조항 중에서 꼭 필요한 조항의 삽입이나 개정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헌정사 75년 동안에 9차례의 개헌을 했지만, 그때마다 당시 힘을 가진 세력이, 자신에게 유리한 권력구조나 정치 관련 조항 바꾸는 것을 위주로 했던 나쁜 선례 때문에, 개헌이라면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국민도 많다.
그러나 이제 21세기에 맞는 헌법으로 바꿀 필요가 절실하다. 개정돼야 하거나 첨가돼야 할 쟁점 사항은 이미 모두 나와 있고 수년간 토론도 할 만큼 했다. 이제 여야가 합의만 하면 바로 개정할 수 있다. 하루빨리 새로운 시대에 맞는 헌법으로 개정되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