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뿌리깊은 해남이야기 35 | 이준묵 목사와 등대원
이준묵 목사는 회고록에서, 등대원이 ‘맨발의 성자’ 이현필 선생이 시작한 것이라고 밝힌다. 6ㆍ25이후에 광주시내를 배회하는 아이들 36명을 보살피고 있던 이현필이 해남읍교회의 이준묵 목사에게 도움을 청해왔고, 이 부탁을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인 이 목사가 해남등대원을 세운 때는 1953년 3월6일이다.
등대원이라는 이름은 마태복음 5장16절에서 가져왔다. 원가로 사용하는 찬송가 510장에는 '하나님을 등대로 삼아라. 너희들도 세상을 비추는 등대가 되라'는 내용이 있다. 원가를 부를 때마다 지금은 고아이지만 언젠가는 세상의 빛이 되고 등대가 되리라 다짐했을 초롱초롱한 눈망울들이 눈에 어리는 듯하다.
2022년 6월3일자 만화에서 소개한 오영석씨는 등대원이 어떤 곳이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는 독일유학을 다녀와서 한국신학대학교 총장까지 지냈다. 그가 아무리 뛰어난 인재였다고 하더라도 등대원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었을까?
미국의 교회에서 들어오는 헌 옷은 필요한 이들에게 팔고, 그 돈으로 옷감을 사서 아이들에게 새 옷을 지어 입힌 김수덕 사모의 이야기는 구우일모(九牛一毛)다. 사모는 모든 등대원 식구들의 어머니였다. 평생동안 결혼도 하지않고 원생들을 품고 뒷바라지 했던 조성애 여사는 등대원의 영원한 누이였다.
잘 나가던 대기업을 팽개치고 해남으로 내려와서 아버지가 세운 등대원을 이어받아 대를 이어 사랑을 베푸는 이성용(이준묵 목사의 첫째)씨는 등대원의 든든한 장남이다.
이분들 외에도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등대원 가족들을 보살핀 분들은 많다. 그분들을 일일이 소개할 지면이 없어서 안타깝다.
다행히 이준묵 목사가 쓴 <회고록>이 남아 귀한 이름들이 전해지고 있으니 해남의 젊은(어린) 후생들은 일독하시기를 강권한다. 등대원을 거쳐 간 원생들은 1천명이나 된다고 한다. 님들의 행복과 건투를 빈다.
(36회 해남 이야기:산이중학교 원상철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