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있는 공무원이 재난 막는다

2023-11-13     송창영/광주대 건축과 교수
송창영(광주대 건축과 교수)

 

 프랜시스 올덤 켈시’는 뉴욕타임스에서 ‘20세기 미국의 여성 영웅’으로 칭했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은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공무원 중 한 명으로 기억되고 있다.
미국 FDA(Food and Drug 
Administration)에서 신약 허가 신청서를 평가하는 업무를 담당하던 그녀에게 처음 접수된 신청서는 ‘케바돈(Kevadon)’이라는 이름의 진정제 ‘탈리도마이드’였다. 
1953년 독일 제약사 그뤼넨탈에서 개발한 이 신약은, 독성이 없어 부작용이 거의 없는 진정제로 알려져 있었다. 특히 임산부의 입덧 방지에 뛰어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입덧이 심한 임산부들이 처방 없이 자유롭게 복용했다. 이미 전 세계 46개국에서 판매되고 있었기에, 미국에서 허가를 받는 것 또한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켈시 박사는 회사 측이 제출한 자료가 부족하며, 약품의 독성과 효과 등에 대한 추가 정보를 제출하기 전까지 허가 신청서에 도장을 찍어주지 않았다. 회사 측에서의 강력한 항의와 함께 온갖 로비가 계속됐음에도 신입 공무원이었던 그녀는 꼼짝하지 않았다.
그 사이, 팔다리가 짧거나 없는 기형아들이 태어나기 시작했고, 유럽에서 임산부가 탈리도마이드를 복용할 경우 팔다리가 없거나 짧은 해표지증을 가진 기형아 출산을 유발한다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탈리도마이드 부작용으로 전 세계적으로 기형아의 수는 1만2,000여 명에 달했지만, 미국에서는 불과 17명에 그쳤다. 이조차도 허가 이전에 1,000명의 미국 의사들에게 연구 목적으로 나눠준 샘플로 인한 피해였다. 신입 공무원인 그녀의 용기와 깐깐함 덕분에 미국은 기형아 대량 출산이라는 비극을 피할 수 있었다.
2023년 7월15일, 충청도에서는 며칠 동안 폭우가 이어졌고, 특히 청주에서 강수량이 500mm가 넘으면서 도시 곳곳이 물에 잠길 정도였다. 
폭우로 인해 미호강의 수위가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제방 둑이 터졌고, 6만 톤이 넘는 강물이 500m 떨어진 궁평2지하차도로 유입됐다. 지하차도를 지나가던 사람들은 탈출을 시도했으나, 2~3분만에 천장 끝까지 차오르는 물살에 속수무책으로 14명의 안타까운 목숨을 잃어야 했다.
이 비극의 원인으로 지자체의 부실한 대처가 지목됐다. 사고 발생 4시간 전부터 금강홍수통제소는 청주시청과 흥덕구청에 미호강의 범람경보를 발령하며 주민 대피 및 교통통제를 지시했다. 또한 제방 근처 공사 현장에 있던 감리단장이 3차례에 걸쳐 차량통제가 필요하다고 신고했지만, 청주시는 사고가 발생하기 직전까지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더욱이 재난상황실의 소속 직원이 모두 4명임에도 사고 당일 단 1명만이 근무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담당 공무원의 부주의로 인한 인재라는 비판은 피할 수 없었다. 
같은 시기 인접한 군산시에서는 철저한 재난대응시스템 운용으로 일반 적인 침수피해만 발생했을 뿐, 단 한명의 인명피해도 발생하지 않아 국민들의 찬사를 받았다. 
그들은 ‘재해 모니터링 원격감시 및 방재시스템 적기 가동·현장중심·적극행정·신속한 응급복구’를 목표로 전직원이 재난안전대책본부를 가동해 비상근무에 돌입, 이 같은 쾌거를 만들어 냈다.
재난이 발생했을 때, 현장 공무원들이 얼마나 책임감을 갖고 업무를 수행하느냐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피해가 달라지기도 한다. 그만큼 재난 대응에 있어 현장 공무원들의 판단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대한민국에는 국가와 국민에 대해 진정성을 가지고, 맡은 바 책무를 다하는 공무원들이 훨씬 많다.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원칙을 지키는 소신과 용기를 지닌 공무원들이 있기 때문에 국민이 안심하고 일상을 보낼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