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뿌리깊은 해남이야기 37 | 나의 형 김남주

2023-11-13     글,그림=김마루(향우, 웹툰작가)

 

 《내가 만난 김남주, 이룸, 2000》를 보다가 눈이 번쩍 떠졌다. 시인의 동생인 김덕종 선생이 쓴 글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동생이 기억하는 김남주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공부든 운동이든 형은 말 그대로 군계일학이었다. 짱뚱이라고 놀림을 받았지만 형은 호남의 명문이었던 광주제일고등학교에 합격할만큼 뛰어난 학생이었다.
 김남주가 동생의 우상이 된 것은 탁월한 실력 때문만은 아니다. ‘그 큰’ 소나무 꼭대기에 올라가 새알을 내려주고, 구슬과 딱지를 몽땅 따서 동생의 손에 쥐어 준 형. 왕복 10km를 걸어서 해남읍을 구경시켜준 사람도 형 이었다. 형은 읍내를 구석구석 안내해 주고 자신의 학교도 보여주고, 맛있는 얼음과자도 사 주었단다.
 김남주 시인은 많은 사람들의 기대 속에 전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들어갔다. 그런데 대학교 2학년에 다니던 어느 날 한쪽 눈두덩이 파랗게 멍든채 해남에 나타났다. 시위 도중에 경찰의 최루탄에 맞은 것이라 했다. 
 형은 왜 시위를 했어? 동생은 묻지 않았다. 많이 아는 형이 잘 알아서 할 것이라 믿었다. 시월유신 이후에 가방에 종이뭉치를 가득 담아 온 적이 있는데, 박정희의 심장에 총을 겨누자는 으스스한 글도 있었다.
 형은 결국 감옥에 갇혔다. 동생은 한달에 한 번 허락되는 면회를 빼놓지 않고 다녔다. 한 번은 함께 식사를 하다가 허리춤에서 뭔가를 꺼내서 동생의 밥 속에 쑤셔넣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여러 편의 시가 들어있었다. 이렇게 빼돌린 형의 시들은 지인과 동료들의 도움으로 시집으로 출판되었다.
 시인은 옥중에서 9년3개월을 보내야 했다. 도피기간까지 더해서 12년만에 고향땅을 밟고 아버지 산소도 찾아뵈었다. 박광숙 선생과 결혼도 하고 아들도 얻었다. 바로 그 무렵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다. 병마가 그를 덥쳐왔다. 많은 학생들, 노동자, 아주머니들이 찾아와서 눈물을 흘리며 쾌차를 빌었지만 병은 갈수록 악화되었다. 마침내 시인은 동생의 가슴팍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38회 예고: 내가 만난 김남주-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