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외교, 오나라 손권에게 리더쉽 배우자
중국인들은 삼국지, 초한지, 열국지를 3대 고전소설로 꼽는다. 이중 나관중이 쓴 삼국지(원제: 삼국지연의)를 제일로 꼽으며, 실제로 인류역사상 성경 다음으로 제일 많이 팔린 책이라고 하니 케케묵은 옛날 책으로 보아서는 안 될 일이다. 이 책은 청소년기, 중년기, 노년기 언제 다시 읽어도 그때마다 다른 이미지로 다가오며, 흥미진진하고 유익해서 읽을 때마다 새로운 교훈을 얻게 된다.
오늘날 한국의 정치. 경제 등의 리더들이 시대에 맞는 리더쉽이 부족해 혼란스럽고 실망스러워 고전소설인 삼국지에서 그 리더쉽(Leadership 지도력)을 찾아보고자 한다.
위, 촉, 오 삼국의 리더들은 각각 서로 다른 특성의 지도력을 가지고 있었다. 위나라 창업주 조조는 냉정하고 예리한 이성과 강력한 카리스마에서 나오는 지도력이었다. 즉, 그 원동력은 힘이었으며 만기를 총람하는 형(型)으로서 모든 권력을 한 손에 쥐고 친히 다스리는 지시형 리더쉽이다.
촉나라를 세운 유비는 끈끈한 인간미를 바탕으로 대의명분을 중시하며 인의(仁義)에 기반을 둔 리더로 권한을 위임하는 형이다.
강동을 물려받은 손권은 2세 창업주로서, 구성원과 조화를 이루려 노력하며 절제와 실리주의에서 출발했기에 인화(人和)를 중시하는 참여화합형 이라고 할 수 있다.
세 사람 모두 각각의 특성을 가지고 일세를 풍미했던 지도자였기에 취 할 바가 많다. 어쩌면 이 세 사람의 리더쉽 중 좋은 점만 모두 취해서 융합된다면 이상적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나라의 위정자나 경제계의 CEO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리더쉽은 손권의 리더쉽이다.
손권은 아버지 손견과 형 손책이 일찍 사망하자 19세 어린 나이에 대업을 물려받기에 자신의 기반이 약했다.
이에 그는 대업을 지키기 위해 화합이 급선무였고 따라서 인화를 통치 철학으로 삼았다. 그리고 지방 호족세력과 손견의 인맥 및 손책의 인맥 그리고 자신의 인맥 모두를 보듬었다.
손권의 장점은 넓은 도량과 통 큰 정치력에 있었다.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조화시키며 의견이 서로 다른 원로대신과 장수들을 포용 하기도하고, 때로는 엄한 질책으로 기반이 약했던 리더의 권위를 세웠다.
또 이견(異見)의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한없는 인내심으로 설득하고 화합하려 노력했으며 자신의 진실한 마음을 신하들에게 보여주며 신뢰를 얻었다.
특히, 형님 손책의 사람으로 군권을 쥐고 있던 대도독 주유나, 아버지 손견 사람으로 3대를 섬기고 있는 원로 대신 장소와 의견이 맞지 않을 때 이들을 설득하는 데는 많은 인내심과 결단력이 필요했다. 심지어 말을 잘 듣지 않는 대도독 주유에게 군권을 빼앗았다가 며칠 후 찾아가 사과하고 다시 돌려주는 경우도 있었으며, 아버지 같은 장소에게는 사숙(師叔: 스승같은 숙부)이라 부르며 가르침을 청했다.
정치적 기반이 약하고 지지율이 낮을 때는 진정성을 가지고 인내하고 상대방을 설득하며 화합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손권은 취임 이래 수많은 외부 침입에 시달렸다. 큰 전쟁만 보더라도, 적벽대전, 유수전투, 합비전투, 이릉대전 등이 모두 외부로부터 침략을 받아 방어하는 싸움이었다.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부득이 눈치 외교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손권은 줄타기외교의 달인이 돼 실리주의 외교 노선을 통치 이념으로 삼았다. 때로는 촉나라와 손을 잡고 위나라와 대결했고, 어떤 때는 위나라와 손을 잡고 촉나라에 대항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손권은 인화단 결과 실리주의를 근간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래서 손권은 가장 오래도록 군주 지위를 지켰고, 또 삼국 중 오나라가 가장 늦게까지 존립했다.
우리나라의 현실을 직시해 보자. 타의에 의해 남북으로 분단됐고 4대 강국에 둘러싸여 있는 국제정세 속에서 정치, 군사, 경제 등 모든 면에서 실리 외교를 취해야만 번영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오나라의 손권을 통해 배웠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