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대첩 축제는 해남의 자랑
2010-10-01 해남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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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8일부터 10일까지 열리는‘2010년 명량대첩 축제’는 임진왜란 중에 왜군과 맞서 대승을 거둔 명량대첩을 기념하는 축제다.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 : 호남이 없으면 나라가 없다). 이는 이순신 장군이 명량에서 대승을 거두고 쓴 난중일기의 한 대목이다. 가을맞이 국화축제니, 고추아가씨축제와는 정신과 차원이 다른 해남의 자랑이요, 자존심이다.
임진왜란은 1592년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쳐 왜군이 조선을 침범한 사건이다. 1차는 임진왜란, 2차는 정유재란이라 하고 1,2차를 합쳐 통상 임진왜란이라고 한다.
이 사건을 일본에서는‘보로쿠 케이초의 역’이라 하고 중국에서는‘만력의 역’이라고 부른다.
명량대첩은 세계 어느 나라 해군 전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전무후무한 통쾌한 승리의 역사다. 13척의 배로 133척의 대군을 만나 33척을 수장시켜 전세를 역전시켜 나라를 구한 일이다. 이를 어찌 약무호남 시무국가라 부르지 않겠는가.
명랑해전에서 승리하지 못했다면 지금쯤 우리는 일본의 지배를 받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않는가.
그래서 유난히 고향과 고향사람을 사랑하는 나는 명량 대첩 축제가 열리는 10월이 오면 가슴이 설렌다. 그간 우리 해남군 주관 아래서는 넉넉하지 못한 예산 때문에 초라한 축제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제는 도 주관 아래 3일 동안의 성대한 축제가 되었다.
명량! 아니 아름다운 우리말 울돌목.
평상시 울돌목 물살의 속력은 초속 6m다. 지금은 2개의 진도 대교를 떠받치고 있는 다리의 교각에 바닷물의 흐름이 방해를 받는다.
그러나 전에는 울돌목을 빠져나가는 물소리가 마치 아이들 울음소리처럼 십리 밖에서도 들린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 울돌목이다. 또 사적에 보면 숙종(1688)때 명량해전을 기념하여 우수영에 기념비를 세웠다.
대학자 이민세가 비문을 짓고 명필 이정영이 썼으며 윗 부분 신석 글씨는 <구운몽>의 서포 김만중의 작품이라 했다. 이를 1942년 일제는 반 시국적 유물이라 하여 파서 한양의 경복궁 뜰에 버렸다. 이를 광복 후 해남군민들이 자발적으로 ‘충무공 유적 복구 기성회’를 조직하고 경비를 모금하여 1950년 복원하였다.
그 후 보물 제503호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른다.
군민 모두가 해남을 대표하는 명량대첩 축제에 적극 참여하여 마음껏 즐기고 축하하자.
민상금(마산출신 전 서울시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