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문 앞에서 살아난 느티님

2024-05-20     윤주연/전 해남군청 사무관
     윤주연/전 해남군청 사무관

 

 군민광장 옆길을 지나다 자그마한 현수막이 눈에 끌려 걸음을 멈췄다. 
군민광장 부근 식당 앞 도로를 침범하고 있던, 아니 사람의 편의를 위해 자신의 삶터를 도로에 빼앗겨 버린 아름드리 노목이 5월10일 제거된다는 현수막이었다. 
누가 이런 고통의 생을 살도록 만들어 놓았을까? 그리고 그 생을 단축해 놓았을까?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느티님을 유심히 쳐다보니 한쪽은 녹음이 무성한 반면 한쪽은 움을 내지 못한 앙상한 가지들을 힘겹게 이고 있었다.
다시 쳐다보고 또 쳐다보는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해남군청 공무원으로 근무했던 긴 세월 동안 느티님은 쉼 없이 나를 지켜봐 왔을 것이다. 
해남군청과 군의회 그리고 해남경찰서와 해남교육청, 보건소, 버스터미널이 이곳에 있었을 때 여러 기관의 임직원들이 겪었을 즐거움과 슬픔, 그리고 해남의 장정들이면 누구나 군민회관과 보건소를 오가며 입영 신체검사를 받고 판정을 기다리던 모습, 군민광장에서 울부짖던 군민들의 애환의 목소리와 손짓은 물론이요. 수성송의 그늘을 벗 삼아 뛰노는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고 귀담아 줬던 그 님이 이제는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나가신단다. 어찌 평범함과 비교되리요.
바삐 오가며 때론 생각에 잠긴채 걷는 직원의 손에 들려진 결재판 속 서류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 있을까? 궁금도 했을텐데 느티님은 그 궁금증을 어찌 해소했을까. 
토요일 오전 근무가 끝나는 퇴근 무렵 느티님 바로 옆 보건식당에서 돼지목살을 안주 삼아 소주로 목을 적시던 일, 인사불만에 거나해진 직원이 느티님의 바로 앞 군수 관사 철문을 발로 걷어차 혼쭐났던 일, 5·18민주화 운동 당시 군수실을 떠나 부근 간부 집으로 피신한 군수의 모습, 경찰서의 총기가 군부대로 후송되던 모습, 을지연습 때면 반복되는 군청의 침투 훈련 시 쏘아 올린 공포탄의 소음을 들어가며 밤을 같이 지새줬던 추억의 느티님!
크고 작은 일과 수많은 목소리를 숱하게 듣고 봐왔을 느티님은 그동안 무슨 생각을 하며 기나긴 삶을 견뎌 왔을까? 
아니 무어라 외쳤을 수도 있는데 우리가 듣지 못했는지 모른다.
아쉽다! 느티님이 언제 무슨일로 태어나 우리를 지켜보며 살아 왔는지?
이 정도의 사람이었다면 요란한 장례가 있었을 것 같은데 고요하다.
그런데 느티님과의 이런저런 추억이 가시지 않을 무렵, 나는 놀라운 희소식에 또 놀랐다. 일부 군민들의 요청으로 느티님을 연명치료 한단다. 일단은 살리기로 한 것 같다. 후유! 안도의 한숨이다.
영원할 수는 없겠지만 구사일생한 추억의 님답게 파릇파릇 건강한 모습으로 오랫동안 우리 군민들의 벗이 되었으면 염원해 본다.
부디 건강을 되찾길. 느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