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수라활활타, 뜨겁게 불태운 소멸과 기억의 축제

2024-05-27     김지영/(주)마고 대표, 공인회계사
                              김지영/(주)마고 대표, 공인회계사)

 

 2024년 4월27일, 폐교된지 20여년이 흐른 황산면 옥동초등학교에 새로운 예술 프로젝트를 펼치고자 전국에서 15팀, 30여명의 청년 예술가가 모여들었다. 회화‧사운드‧목조‧설치‧금속‧그라피티‧사운드‧사진‧퍼포먼스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었다. 온라인에 모집 홍보를 했는데 예상외로 많은 지원서가 몰려 심사숙고 끝에 선정한 팀이었다. 폐교의 빈 교실을 작업 및 전시공간으로 사용하고, 3,000여평의 넓은 소나무 숲을 이용해 캠핑을 할 계획이었다. 애초에는. 
그런데 모집한 예술가들이 해남에 도착하기 2주 전 폐교 건물의 정밀 구조안전진단 결과가 나왔고, 더이상 사용할 수 없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다.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였다. 
급하게 숙박과 전시공간을 위해 마을회관과 창고를 빌리고 학교 앞에 비어있던 상가도 단기로 임대했다. 다행히도 지역 주민들 모두 우리의 프로젝트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공간을 기꺼이 내어줬다. 여전히 그 많은 인원이 작업을 하고 전시를 하기에는 턱없이 작은 공간이었지만 급작스러운 안내에도 참여를 약속한 예술가 전원이 변경하지 않고 해남으로 왔다. 
처음에는 악재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우리가 옥동초라는 공간에 갇혀 마을과 분리되지 않고 함께 호흡할 수 있음에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 어르신들이 오가는 길에 어디서 온 청년들인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 하셨고, 젊은이들이 열심히 하는 모습이 예쁘다며 신기해 하고 흐뭇해 하셨다.
10일이라는 시간이 길고도 짧았기에, 각각의 작가들이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함께 하는 프로그램은 최소한으로 운영했다. 요가 또는 러닝으로 아침을 깨우고, 오후에는 옥매광산과 임하도 상괭이 관찰대를 방문했다. 저녁에는 모닥불 아래 담소를 나누고, 참여작가팀에서 준비한 프로그램으로 자연스레 밤시간 워크샵도 진행됐다.
행사를 진행한 눙눙길 청년마을 팀 역시 합을 맞춘 지 겨우 3개월 차, 열흘간의 예술인 캠프뿐만 아니라 마지막 날 진행할 전시, 공연, 장터를 함께하는 축제까지 준비하려니 정말이지 혼돈의 카오스 그 자체였다. 
헌데 우리의 시련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제 좀 안정을 찾아가나보다 싶던 찰나, 축제가 예정돼 있던 5월5일 어린이날 강풍을 동반한 비 예보가 바뀌질 않고, 인근의 공룡 축제 역시 불꽃놀이 일정을 4일로 변경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아수라활활타 축제의 대부분이 야외공간에서 이뤄지며, 마지막 순서로 배치한 소멸식에서는 작품의 일부를 불에 태워야 하는데 큰 비가 온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터였다. 긴급하게 축제 일정을 하루 앞당기기로 결정하고 모두를 더욱 재촉할 수 밖에 없었다. 
큰 행사 앞두고 건물 없어져, 날짜 당겨져, 이렇게 고난과 역경이 많을 수가 있었나 싶었지만 그 대신 어마어마한 인복이 있었다. 참여자들 간의 크고 작은 갈등이나 이탈 없이 작업실에서는 매일 웃음꽃이 피어났고, 여러 가지 변경사항에도 불구하고 15팀 모두 완벽하게 너무나 멋진 작품을 선보였다. 해남을 담고, 옥매광산을 담고, 상괭이를 담고, 이 땅의 흙과 자연과 풍경과 소리와 기억, 소멸하는 것과 탄생하는 것을 각자의 방식으로 담아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리고 축제 날짜가 급하게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3,000여명이 축제장을 찾아 작품과 함께 호흡했다.
축제에 미처 방문하지 못해 아쉬운 분들을 위해 옥동초 야외전시(명량로 925), 귀연다실‧옥동편의점에서의 실내전시(명량로 926-1)는 5월31일까지 계속할 예정이다. 축제의 흥은 가셨지만 대신 고요한 소나무 숲과 어우러진 작가들의 활활 타오른 예술혼이 여러분을 반길 터이니 한 번씩 걸음 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