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뿌리깊은 해남이야기 54 | 조선의 서체, 동국진체 완성한 원교 이광사

2024-06-11     글,그림=김마루(향우, 웹툰작가)

 

 원교 이광사의 가문은 고조부로부터 부친까지 대대로 판서 이상을 지낸 명문가였다. 
자녀들도 뛰어난 학자들이었다. 역사서 <연려실기술>을 지은 이긍익은 원교의 장남이고, <신재집>의 저자 이영익은 차남이다.
안타깝게도 원교의 삶은 고단했다. 당쟁에 연루되어 함경도 부령과 전남 신지도의 유배지를 23년이나 떠돌다가 유배지 신지도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이광사는 좌절하지 않았다. 유배지에서도 제자들을 가르치고 경학 연구에 매진했다. <두남집> <동국악부>를 저술했다. 옥동  이서, 공재 윤두서로부터 물려받은 동국진체도 완성했다. 
원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서결(書訣)>을 펴낸 것이다. 이 책은 옥동 이서의 <필결(筆訣)>과 함께 한국서예 이론서의 효시로 알려져 있다. 서예를 연마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 이론적 토대까지 탐구해 낸 성실성이 놀랍다. 
“근세의 서가(書家)로서는 오직 원교 이광사만이 독보적인 존재이다. 작은 글로 쓴 이광사의 해서ㆍ행서ㆍ초서는 왕희지와 왕헌지의 경지에 도달했다.(출전: 여유당전서)” 원교의 글씨에 대한 다산 정약용의 평가다. 학자들은 다산의 글씨도 동국진체를 이어받은 것으로 분류한다. 다산의 <탐진촌요> 제11수는 원교에게 바치는 오마주다.
“시골 애들 글씨가 어찌 그리 엉망인가(村童書法苦支離) 점 획 삐침 파임 낱낱이 비뚤어져(點畫戈波箇箇欹) 글방이 옛날에 신지도에 열려 있어(筆苑舊開新智島) 아전들 모두가 이광사에게 배웠었는데(掾房皆祖李匡師)” 
붓글씨가 서투른 시골 아이들에 대한 실망으로 시작하는 이 시는,  이광사가 유배지 신지도에 글방을 열어서 아전들을 가르친 역사적 사실을 돌아보면서 큰  선비 이광사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노래했다. 
이광사는 이미 한시의 주인공이 될 만큼 널리 알려진 명필이었던 것이다. 이광사의 글씨는 전라도의 사찰에 많이 남아있는 편이다. 해남 대둔사를 비롯해서 강진 백련사, 영광 불갑사, 구례 천은사, 부안 내소사, 고창 선운사에 가면 만날 수 있다. 
글씨가 위엄이 있고 하나같이 살아 움직이는 명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