눙눙길, 뭘 하겠다는 거야? (1)
내가 해남에 귀촌한 것은 2021년 6월, 황산면 한적한 마을 안의 40년 된 한옥을 매입하면서 부터다. 예상보다 길고 힘들고 지지부진했던 공사기간을 거쳐 낡은 집은 현대적이고 아름다운 한옥 스테이 와카가 됐고 현재는 수많은 손님들을 맞고 있다.
와카를 운영하던 중, 방문한 지인·손님들의 반응 중에 “해남이 너무 좋지만 멀고 오기 어렵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걸리는 시간이 비슷한 남해안의 다른 도시들보다 더 멀게 느껴진다고 했다. 상대적이고 심리적인 거리감이지 않을까 싶었다. 땅끝이라는 수식어가 이런 선입견을 더 강화시키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친숙도와 매력도 같은 이미지를 바탕으로, 상대적인 감각으로 비슷한 거리도 다르게 느낀다. 이 작은 한반도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5시간 거리가 어마어마하게 느껴지지만 남·북미나 아프리카 같이 도시들이 띄엄띄엄 있는 대륙을 여행하다 보면 5시간은 아주 가까운 바로 옆 도시다.
그렇다면 친숙하고 매력있게 느끼게 해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눙눙길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해남을 멀게 느끼게 하는 데에는, 해남 하면 떠오르는 고구마 배추 외에 상징적인 공간이 없다는 점이 크다. 물론 땅끝전망대, 대흥사, 우수영관광지 등 유명한 곳들이 있지만 해남읍내를 제외하고는 관광지이면서 이벤트 밀도가 높은 곳은 없다.
이벤트 밀도란 건축가 유현준 교수가 제안한 개념으로, 거리를 걷다가 마주하게 되는 상점 입구의 수로 계산하며 이벤트 밀도가 높을수록 거리는 보행자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한다. 이벤트 밀도가 높으면 공간의 속도가 느리다. 서울의 성수, 홍대, 가로수길 등뿐 아니라 경주 황리단길, 여수 낭만포차거리, 통영 동피랑 등이 그런 공간이다. 해남에도 다양하고 매력적인 곳이 많지만 서로 간의 거리가 멀고 차가 없이는 이동이 어렵다. 이벤트 밀도가 아주 낮다.
처음에는 가장 가능성이 높은 해남읍 내의 이벤트 밀도를 높이는 건 어떨까 고민해봤다. 가만히 살펴보니 장날을 제외하고는 읍내를 걸어 다니는 사람의 수가 많지 않다. 대부분 읍내 안에서도 차를 타고 이동한다. 읍내를 순환하는 대중교통이 없고, 대부분의 길이 차량 위주로 통하기 때문에 보행하기에 안전하지 않다는 느낌도 든다. 또한 무언가를 만들기에는 인근 지역 비슷한 곳과 비교할 때 해남읍은 유독 세도 비싸다.
다음으로는 내가 살고 있는 황산면을 둘러보며 가만히 생각해봤다. 옥공예마을은 어떨까? 오시아노, 진도대교, 우수영관광지로부터 공룡대로로 연결되고, 공룡박물관과도 가깝다. 1차선 도로를 품은 대부분의 마을과 달리 과거 상업이 발달했던 지역인지라 2차선도로를 가운데 두고 마을이 형성돼 있다.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 어디를 가도, 걷고 싶은 거리는 2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있다. 2차선이 사람과 차량이 유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최적의 길이다.
게다가 마을 안의 폐교인 옥동초가 새로운 쓸모를 찾고 있고, 같은 부지 내에 100인을 수용할 수 있는 전국최초 외국인 노동자 기숙사가 지어지고 있다. 해남 옥공예의 역사를 품은 옥매광산과 희생광부 118인 추모비와 옥창고에서 끌어낼 수 있는 이야기들도 있다. 찾아오고 싶은 매력있는 동네가 되려면 우리만의 이야기가, 정체성이 필요하다. 옥공예 마을은 끌어낼 수 있는 매력이 아주 많은 동네다.
유명관광지를 방문하던 관광트렌드가 호텔, 스테이, 맛집을 방문하기 위해 간 김에 관광지도 들리는 ‘목적형 방문’으로 달라지고 있다. 예쁜 숙소가 목적이어야, OO식당이 목적이어야 해남에 와서 대흥사도 가보는 것이다. 옥공예 마을이 가진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내 ‘눙눙길’이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가봐야 할 목적이 될 만한 문화공간, 숙박, 식당들로 다채롭게 채워진다면 해남을 가까운 곳으로, 가보고 싶은 곳으로 만들 수 있겠다 싶었다. (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