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뿌리깊은 해남이야기 59 | 《지암일기》 둘러보기(2) 논 붕어와 어성포 고기잡이
1960년대만 하더라도 시골의 논에는 붕어가 살았다. 붕어들은 논에서 알을 낳았고, 새끼 붕어들은 안전한 벼 사이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그러다가 큰비가 내리면 더 큰 강이나 저수지로 이사 갔다. 요즘엔 상상하기 힘든 이야기다. 그런데 추억 속의 논 붕어 이야기가《지암일기》에 나온다.
“이곳 농토 사이 수로에는 작은 붕어가 무수히 거슬러 올라오는데, 으레 입추가 지난 뒤에 통발로 잡는다. 올해도 7월부터 매일 잡아서 아침저녁으로 제전(祭奠)에 올리고 일가 간에 나누어 먹고도 남았다(1693년 8월10일).”
일기에 나오는 장소는 죽도(화산면 금풍리)다. “이곳에는 다른 물산이 없고 오직 논 붕어만을 별미로 친다(1697년 8월12일).” 논 붕어가 상당히 유명했나 보다.《지암일기》에는 어성포에서 고기잡이를 한 이야기도 나온다. “동틀 무렵에 출발해서 어성포 아래로 갔다. 차일을 치고 밀물을 기다렸다가 일시에 발을 치고 그물을 끌었다. 어린 숭어와 은어를 꽤 많이 잡아 삶기도 하고 회로도 먹었다(1696년 8월 2일).” 어성포 이야기는 반복된다. “어성 아래에서 천렵을 했다. 근처에서 20여 명이 모였다(1697년 8월2일).”
윤이후는 간척을 위해 쌓은 제방에서도 고기를 잡았던 모양이다. “윤이석댁 제언 안에 어린 숭어가 많지만, 뻘이 깊고 수초가 빽빽하여 그물을 설치할 수가 없다. 그래서 밀짚으로 벌(筏)을 만들었다. 물고기를 약간 잡아 팔마로 보냈다(1699년 윤7월3일).”
100발이나 되는 어렴을 엮어서 죽도(화산)포구 북쪽에서 잡어를 잡기도(1697년 8월1일) 한다. 기대했던 짱뚱어(잠을 많이 자서 ‘잠둥어’라고도 함)이야기는 일기에 없다. 누군가가 고천암 짱뚱어의 추억과 훌치기 낚시를 소개해 주시기 바란다. 추억도 기록해놓지 않으면 사라지기 때문이다.《지암일기》에서 어성포 이야기가 나왔을 때, 지금의 어성포는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했지만 자료를 찾지 못했다. 여전히 숭어나 은어가 잡힐까? 김남주 시인의 아버지가 큰 돈을 벌었다는 참게는 어떻게 되었을까? 300여년 전에도 고기를 잡을 때 떡밥을 풀었다는 사실(1693년 8월9일)도 확인할 수 있다.
일기에는 붕어소금의 제조법과 그 효능에 대한 이야기도 있지만 소개하지 않는다. 흔하던 두루미도 찾아오지 않고 붕어도 자꾸 줄어든다는데, 붕어소금 타령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