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관광의 섬 제주도, 난립한 특화거리의 위험성

이곳이 특화거리 맞나요?…돈 투자만이 성공 아니다

2024-07-22     김유성 기자

 국내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제주는 관광의 도시답게 수많은 특화거리와 특화마을이 조성돼 있다. 이중에는 지속성을 유지하며 관광과 제주도민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 있는가 하면 쇠락의 길을 걷다 사라지다시피한 곳도 있다. 또 동종업으로 묶인 특화거리의 특성상 거리가 주는 대표성으로 인한 피해도 따른다. 특화 거리를 성장시키고 관리하는데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흑돼지 특화거리

30년 동안 유명 먹거리 거리로 명맥을 유지해오던 ‘제주흑돼지특화거리’가 타 업소에서 발생한 ‘비계 삼겹살’ 논란으로 유례없던 침체기를 겪고 있다.

 

제주의 수많은 특화거리는 모두 지역 경제 활성화와 관광객 유치를 목표로 하고 있다. 
특화거리를 조성함으로써 집적화로 인한 시너지가 주목적이다. 
하지만 특화거리가 가지고 있는 대표성을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표성을 가진 만큼 외부 환경에 따른 여파가 크기 때문이다. 
제주도 내 특화거리는 방어축제거리, 아랑조을거리, 칠십리음식특화거리, 고마로거리, 흑돼지거리, 서두부 명품횟집거리, 바오젠거리, 국수문화거리, 탑동테마거리가 있고 특화마을은 애월읍 곽지리, 조천읍 함덕리, 한경면 청수리, 화북동 화북아파트, 오라동 정실마을, 이호동 현사마을 등 수없이 많다. 
올해에도 한림읍 상대리, 구좌읍 월정리, 성산읍 수산2리가 새로운 특화마을로 꾸며지는데 체험, 산책로, 포토존, 벽화, 주민쉼터, 생태관광 등 대부분 대동소이한 주제로 꾸며지고 있다. 
‘특화’라는 단어에서 보듯 특정 공간의 인위적 형성으로 오는 장점도 있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도 생긴다.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특화거리 중 대표적인 곳은 건립동 ‘흑돼지거리’다. 제주항 인근 탑동광장에 30년 전부터 자연스럽게 조성된 흑돼지거리는 제주 특산물이자 제주 대표먹거리인 흑돼지를 이용한 식당 20여 곳이 모여 있는 곳이다. 
흑돼지 삼겹살과 목살, 갈비를 주로 판매하고 있으며 흑돼지순두부찌개, 흑돼지모듬전골, 흑돼지김치찌개 등 흑돼지를 활용한 다양한 음식을 만나 볼 수 있다. 
관광에 먹거리가 빠질 수 없듯, 제주 여행객들이라면 꼭 한 번 방문하던 곳이다. 제주시에서는 흑돼지거리를 성공시키기 위해 조형물과 특화거리를 알리는 간판을 세우고 식당 주변을 새롭게 단장했다. 
또 제주 먹거리 홍보에 있어 흑돼지거리는 결코 빠지는 곳이 정도로 홍보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특화거리로 안정감을 찾고 즐비한 식당에는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런데 최근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 흑돼지거리의 이미지가 오히려 부작용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지난 4월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제주흑돼지 비계 논란’이 일었다. 제주의 한 고깃집에서 비계 비율이 과도하게 높은 삼겹살을 판매했고 해당 사실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공분을 샀다. 
뒤이어 다른 음식점에서도 ‘비계 삼겹살’을 팔았다는 폭로성 게시물이 쏟아졌다. 당초 비계 삼겹살을 판매한 곳은 흑돼지 거리가 아닌 중문의 A식당이었지만 애먼 흑돼지거리가 집중포화의 대상이 된 것이다. 논란의 진위를 놓고 왈가왈부 하는 사이 흑돼지거리의 명성도 추락하기 시작했다. 흑돼지 식당은 곧 흑돼지거리라는 이미지가 발등을 찍은 것이다. 
건입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상인은 “1시간을 넘게 자동차로 달려야 할 정도로 거리가 먼 서귀포 중문에서 흑돼지 비계 삽겹살 논란이 터졌는데, 그 피해는 흑돼지 특화거리가 보고 있다”며 “평소 같으면 관광객으로 북적될 시간인데, 이제는 외국인 관광객 조차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흑돼지거리 인근의 다른 식당의 손님들은 코로나 이후 어느정도 회복세를 보이지만 흑돼지 거리는 코로나 당시와 비슷한 수준이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일이 비단 이번 사태뿐 아니라, 백돼지를 흑돼지로 속여 판매하는 행위가 적발되거나 국산과 외국산을 혼합해 국내산으로 위장 판매하는 행위, 원산지 미표시 등 사건사고 터질 때마다 매출이 출렁이는 부작용이 생겼다.  
관광객들은 흑돼지 요리에 대한 부정적인 경험을 토대로 흑돼지거리를 평가하게 됐고, 이러한사회적 이슈로 인한 집단성의 위험도가 흑돼지거리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원인이 된 것이다.  
더욱이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자마자 엔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관광객마저 해외로 몰리는 상황이라 비계 논란 사태는 일부 음식점의 개점 휴업으로 이어질 정도로 큰 타격을 줬다. 
그동안 제주도의 바가지요금과 부실한 먹거리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제주도의 관광철 특수를 노린 바가지요금 논란은 매년 SNS와 뉴스를 통해 전파됐고 이렇게 누적된 데미지를 제주 흑돼지거리가 고스란히 떠안은 것이다. 
더욱이 제주도 관광업은 전례 없던 침체기를 겪고 있는데, 올 4월 기준 제주를 방문한 관광객은 370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9% 감소했으며 2022년 8.3%에 이어 매년 큰 폭으로 감소세를 보이고, 관광객이 제주를 머무는 기간도 매년 10%가량 줄었다. 
또 올해 1분기 관광 소비 합계는 2,980억 6,675만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15.1% 급감했다. 관광업의 침체와 흑돼지 음식의 부정적 이미지가 30년 명맥의 흑돼지거리에 치명타를 안겨주고 있다.

특수성 없는 서문 가구특화거리

전혀 특화된 점이 없는 서문가구특화거리는 가구제조업의 트랜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특화거리가 무색할 만큼 방치된 곳도 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상권 활성화 차원에서 2013년 7월1일 ‘제주특별자치도 상권 활성화를 위한 특화거리 지정 및 지원 조례’를 제정하면서 특화거리 조성 및 다양한 지원책에 대한 구체적인 법안을 만들었다.
서문가구거리의 경우 1km 이내 가구 제조 및 판매업 27개소가 몰렸고 종사자 120명, 1일 평균 방문객이 200명 가량의 상권이다. 
제주시 행정에서는 2014년 이곳을 서문가구특화거리로 지정했는데 이는 서문가구거리의 특성 및 역사성, 상인회의 추진의지, 발전가능성 등이 반영됐고 특화거리 지정 이후 업종 특색을 살린 가구 전문 상권으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입구에 세워진 ‘서문가구특화거리’ 간판만이 특화거리임을 알리고 있을 뿐, 보통의 가구점 밀집 거리와의 차별화를 찾아보기 힘들다.  
듬성듬성 비어있는 상가에는 임대 문의를 알리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고 오가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가끔 싱크대 제작을 위해 방문하는 트럭만이 오갈 뿐이다.  
행정에선 조례까지 만들면서 가구거리를 지원하겠다고 나섰지만 정작 상권 쇠락 과정에선 아무런 역할도 해내지 못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실패한 테마거리가 그렇듯 특화거리의 체계적인 운영과 장기적인 계획 없이 추진한 결과였고 거창한 시작에 비해 결과를 책임지는 이도 없었다. 
그렇다 보니 주민센터에서 최소한의 시설관리만 할 뿐 이렇다 할 투자나 지원, 사후관리도 없다. 특화거리 지정 의미가 전혀 없는 실패 사례다. 
과거부터 제주도는 물류 이동이 매우 폐쇄적이었다. 육지 같으면 서울과 부산, 강원도까지 배달되지 않은 물건이 없지만 제주도의 경우 선박과 항공만으로 제품을 조달해야 했기에 운송비 자체가 과도하게 높았다. 
따라서 가구와 같은 대형 제품은 육지에서 제주도로 운송이 불가한 경우가 많았고 공간에 꼭 맞는 상품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직접 제작하거나 비싼 운송비를 감당해야 했다. 
이러한 섬의 특수성은 가정용 가구, 벽지, 인테리어 등 다양한 제품이 한 거리에 몰려있는 서문가구거리로 발길을 붙잡았고 특히 신혼부부나 집 리모델링을 위한 손님들로 언제나 붐볐다. 
또한 서문가구거리 반대편에 조성된 서문 공설시장은 제주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큰 장을 형성해 유동인구가 상당했다. 
하지만 인구가 늘고 관광업의 급속한 변화는 제주시 원도심의 공동화를 가져왔고 또 상인들이 변화하는 트랜드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원도심의 쇠락과 운명을 함께했다.
 여기에 더해 버튼만 누르면 온갖 상품들이 제주도까지 배달되는 광역 택배 시스템이 빠르게 구축되고 있다는 점도 가구특화거리의 쇠락을 앞당겼다. 
특화거리를 조성 당시 이미 이러한 변화는 시작된 상태였지만, 단순히 특화거리 지정 뿐, 확장 및 성장을 위한 장기적인 계획이나 가구제조업의 변화, 물류 이동의 변화, 소비 특성의 변화와 같은 다가올 시장변화에 대해서는 전혀 대비가 없었다. 
오히려 ‘가구특화거리’라고 불리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제품의 다양성이 떨어지면서 여느 특화거리와 같은 전문성을 기대하고 방문하면 큰 실망을 하고 돌아서는 곳으로 전락한 것이다. 서문가구특화거리는 제주 시민들조차 왜 그곳이 특화거리라 불리는지 알지 못한다.      
특화거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인프라 조성 외에도 지속적인 마케팅, 지역 상인과의 협력, 그리고 관광객의 요구를 반영한 콘텐츠 제공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김유성 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