눙눙길, 뭘 하겠다는 거야?(3)

2024-08-19     김지영/(주)마고 대표, 공인회계사
                               김지영/(주)마고 대표, 공인회계사

 

 야심차게, 일 벌여보렵니다! 했던 내 안의 동력이 2023년 지난한 기다림의 시간 동안 서서히 꺼져가는 느낌이었다. 청년마을 공모사업으로 3억 지원금에 선정이 됐어도, 지역소멸대응기금으로 30억대 예산이 승인됐다는 소식이 들려왔어도 질투 어린 시선과 호기심, 적대감 같은 바람따라 들려오는 것들 외에 내게 득이 되는 일은 딱히 없었다. 내가 하고 싶고, 재밌는 일들을 맘껏 벌여볼 수 있는 상황은 오지 않았다. 
공공성을 목적으로 한 각종 공모사업에 지원서를 넣기 바빴다. 황산면 주민자치회에 참여해서 2024년에 SNS 교육과 옥매광산 전국투어 전시를 할 수 있는 예산도 만들고, 2024년에 옥동초 뒤편에 숲 조성하는 사업비도 만들고, 마을회관 옆에 옥공예 작품으로 용을 만들어 옥매수를 마실 수 있는 약수터도 조성했지만, 내가 일한 몫이 있기는커녕 하다 보면 자부담이 추가로 들어갔다. 또 대부분 예산이 군에서 직접 집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애매한 부대비용은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내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하며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혹시 돈을 횡령하는 것 아니냐는 마을 주민분의 농담 섞인 질문에 순간 화가 나기도 했다. 보조금 집행이 빨리 되지 않는다고 재촉하는(할 수밖에 없는) 담당자의 전화가 버거웠고, ‘청년마을이라고 해서 와봤는데 아무것도 없네요. (도대체)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 거죠?’라는 기자의 질문에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아무도 그렇게 대놓고 말하지 않았지만, 예산은 그렇게 많이 받았다는데 왜 눈에 보이는 성과가 빨리 나지 않느냐고, 나를 질책하는 것만 같았다. 너는 왜 굳이 회계사라는 좋은 직업을 냅두고, 연고도 없는 해남까지 가서 좋은 소리도 못 듣고 고생만 하고 있는거야? 그렇게 해서 돈은 벌어? 라는 가벼운 관계들이 하는 소리가 내 안에서도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하지만 원래 사람들은 타인에게 관심이 별로 없다. 잘 해내고 싶다는 나의 조바심이 타인의 가벼운 반응을 확대 해석하고 이를 자기비난의 수단으로 쓰고 있었다. 괴로웠고, 그저 도망치고 싶었다. 그렇게 차디찬 겨울이 지나갔고, 슬며시 봄이 왔다. 아마도 올 3월부터 함께 하게 된 새로운 팀원들 덕분이었으리라. 새로운 동력을 얻어 수십 명의 새로운 아티스트들과 만나 아수라활활타라는 예술인 캠프와 축제를 정신없이 치러내고 보니, 문득 잊고 지냈던 불안감이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내가 ‘굳이’ 벌이고 있는 이 모든 일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나는 부딪히고 깨지기도 하면서 성장하고 있었다. 그 불안함이 어디서 온 것인지 인지하고 해석해낼 수 있는 내가 됐다. 지금 여기에서 사람들을 모으고, 공간을 만들고, 일을 벌이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도 아니고, 해남을 위해서도 관계인구를 위해서도 그 어느 다른 누구를 위해서도 아니다. 
‘회계사’로의 정체성에 잡아먹힐 뻔한 과거의 나는 도피처를 찾아 해남으로 왔다. 하지만 불안의 원천은 외부가 아니라 내 안에 있었기 때문에 귀촌생활이, 해남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는 건 온전한 착각이었다. 행복하려고 귀촌한건데, 왜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즐기지 못하고 여전히 괴로울까? 라는 질문에서 내면에 대한 탐구가 시작됐고 자연스럽게 눙눙길에서 벌이고자 하는 많은 일이 하고 싶어졌다. 시작하고 나면 또 불안해지는 모습은 여전하지만. 이 모든 과정과 경험을 하기 위해. 그 과정에서 영혼이 성장해나갈 수 있기를 바라며 나는 모든 ‘굳이’들을 만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