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아이들의 예스키즈존 시공간을 찾아서

2024-09-10     윤지선/땅끝아해 대표
                                   윤지선/땅끝아해 대표

 

 지난 주말 땅끝 송지에 아이들 장터가 열렸다. 방학 내내 지지고 볶느라 지친 육아노동자 부모들이 잠시 숨 돌리며 달라지는 계절에 옷장 책장을 털어보자는 뜻에서 ‘옷장털장’. 
또 마침 동네에 희망송지복합문화센터라는 좋은 건물이 생겼고 송지면주민자치위원회와 송지면에서 감사하게도 넓고 쾌적한 공간을 제공해주셔서 가능했다. 
맘에 드는 그림을 골라 페이스페인팅을 하고, 종이접기 작품 감상하며 전수받고, 구름같은 솜사탕을 먹고, 맘에 드는 머리핀과 신발과 장난감들을 실컷 만지며 누려보는 재미에 아이들은 친구들을 불러왔다.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아이들을 풀어놓고 육아노동자 동지인 엄마들과 할머니들은 옷과 책과 육아용품들을 고르며 지역 정보를 나눴다.
읍내가 아닌 우리동네에도 이런 시공간이 정말 절실했다. 평일이면 큰 아이들은 학원이라도 가지만 주말 낮시간에 아이들은 마땅히 갈 곳이 없다. 아이를 낳으라고는 하지만 막상 아이들이 갈만한 곳은 없는 현실에 엄마들도 주말마다 도시로 나가곤 했다. 이런 생활이 이어지면 읍으로 도시로 아예 이주하는 현상은 당연하리라. 
아이들이 마음껏 놀고 즐기고 탐구할 수 있는 아이들의 공유 공간. 학교와 학원만으로 충분했을까? 글쎄, 어린 시절을 막 지나온 이들에게 묻고 싶다. 어린시절 마을이 안전망이 되어줬는지, 고향이 되어줬는지.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안다. 아이들이 있어도 되는 자리인지, 아이들에게 자유가 허락되는 공간인지, 아이들이 마음 놓고 환영받는 공간인지, 주인공이 되는 자리인지, 수동적인 역할이어야 하는 자리인지를. 
한 아이가 자라는데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 공간의 크기가 문제가 아니라 자유와 자아감 자존감이 안심하고 마음껏 뿌리 뻗어 자라날 수 있는 안전망으로서의 마을. 학교도 시설도 행정도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마을이 되어주고 있는가? 만약 아이들이 단 하루라도 아이들에게 열린 공간, 아이들의 공유 시공간이 열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처음이라 실험에 가까웠지만 준비와 마무리를 모든 아이들의 할아버지 할머니 이모 삼촌 선생이 보이지 않게 기꺼이 물건을 보내주고 정리해주고 응원하며 지원해주셔서 가능했다. 
지난 1년간 만나온 땅끝아해 엄마들과 아이들은 샅샅이 아이들의 시공간 지대를 찾아다니면서 아이들의 공유감각을 익히게 되어 장을 펼쳤다. 
생각보다 많은 옷과 책이 나왔고 좋은 옷과 책이 다 교환되지 못한 채 장을 마무리해 읍내 초록가게로 모두 다 보내게 되면서 크게 아쉬웠다. 아차차, 이웃 엄마들이자 육아 동지들이 좋은 옷과 책을 교환할 수 있는 창구가 없다는 것을. 아이 하나를 키울래도 그 많은 육아용품이 다 거쳐가기 마련인데 얻을 곳도 물려줄 곳도 마땅치 않은 현실이라는 것을. 지금 필요한 것은 장터뿐만 아니라 면단위에 아이들에게 허락된 공유 책장과 공유 옷장이 필요하다는 과제가 생겼다.
사실 더 큰 아이들의 공유지대 시공간은 바로 땅끝 곳곳의 품너른 자연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늦게 초가을까지 따듯한 바다에 가서 놀 수 있는 안전한 조수웅덩이가 땅끝 송호해수욕장에 있으니 게들과 망둥어를 쫓으며 맨발놀이터를 하러 가리라. 
생뚱맞게도 튀어나온 군사기지 소리가 못나오게 쑥 들어가도록 한껏 더 재미지게 놀아볼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