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기 땅끝 갯벌공항을 이착륙하는 평화의 날개짓을 보아요
한 달이나 길어진 여름 끝 늦은 꽃무릇이 폈다. 그런데 이상하다. 해마다 이 꽃이 피면 어김없이 제비나비가 날아들어 생동감을 더했는데 이번엔 거의 보이지 않았다. 벼멸구 창궐에 드론 약 맞고 쓰러졌을까? 가을 축제들 앞두고 너무 적극적인 방제 때문이었을까? 침묵의 봄처럼 붉은 기다림에 상사병이 날만 하다.
산제비나비, 사향제비나비, 긴꼬리제비나비… 제비떼처럼 여기저기 무리 지어 퍼덕이던 날개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썰렁하다 못해 철렁해진다. 제비나비뿐만 아니다. 흔하다고 여겨온 제비마저 10년간 90% 사라져 최근 중요한 기후변화 지표종이 되었다.
삼짓날(음3.3) 바다 건너 닿은 해남 첫땅에 막 착륙하는 수천의 제비떼에 휩싸였던 황홀한 순간이 떠오른다. 이제 곧 다음주 중양절(음9.9) 즈음이면 이들은 다시 월동지인 필리핀으로 떠난다. 선발대들은 이미 제주에 집결했고 어제 백포를 날아다니던 제비들은 후발대. 지난여름 우리집에도 제비가 두 번째 번식둥지를 지었다.
애미애비가 먹이를 물고 오지도 않았는데 죄다 입 벌리고 혀 내민 채 헥헥 대고 있던 새끼 제비들. 지난 7년간 매년 기록을 갱신하는 더위 속에 태어나 자라고 있는 우리 아이들과 겹쳐보이니 대자연이라는 안정제 처방이 필요하다.
그래서 징검다리 연휴 시작에 학교도 학원도 공공시설도 갈 데가 없으니 땅끝아해 아이들 데리고 도시로 나가야 하나 고민하다가 마침 땅끝에 와있는 귀빈들을 만나러 갔다. 아이들에게 국군의 날 나라 지키는 공군의 화려한 비행 못잖게 한반도 자연생태계를 지켜온 웅장한 비행이 있다는 걸.
개천절 단군 할아버지와 함께 하늘을 열어온 지구별 여행자들의 중요한 기착지 땅끝 갯벌공항이 바로 송지바다 곁에 있다. 시베리아에서 번식에 성공한 어린 새들을 데리고 온 도요 물떼새들이 곧 추위를 피해 뉴질랜드 호주까지 바다를 건너야 하기에 몸무게를 한껏 불리느라 물 끝선을 따라 열심히 갯지렁이 칠게 짱뚱어를 먹고 있었다.
새들을 방해하지 않게 차량에서 내리지 않고 물 빠지는 갯벌에 조심히 들어서니 패총 해안 물끝선따라 새들이 앉아있다. 조막손으로 입을 막고 눈을 크게 뜨고 소곤소곤 탄성을 삼키며 60cm 몸에 부리만 20cm인 알락꼬리마도요의 긴 부리를 그려보고 숟가락 같은 부리로 바닷물을 저어가는 저어새를 따라 해보며 아이들은 신나 했다. 마침 투망을 건져 올린 어민분들이 나타나셔서 실컷 물고기를 만지게 해주셨다. 아이들은 오랜만에 눈앞에 야생존재를 만나 실컷 만져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요즘 아이들의 야생접촉본능은 발달 기회를 잃고 퇴화돼 벌레만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무서워한다. 자신과 다른 존재에 대한 생명감각은 어린 시절 자연과의 접촉으로 생겨난다. 그건 AI나 매체가 대신해 줄 수 없다.
우리를 둘러싼 바다와 온지구가 물고기와 새들과 곤충들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전지구적 생명감각이 깨어나게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보자. 어린이도 어른이도 기후불안에 진정한 치료제인 큰자연 속에서 황홀감과 안정감을 오감으로 처방받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