⑥화산면 송평리 정청자씨 - 손주에 증손주까지…엄마의 장은 내리사랑
미역국에는 맑은 장만 완도서 함께 이사온 장독
2024년 올해 해남미남축제 미남스토리관의 주인공은 해남 장이다. 14개 읍면에서 조상 대대로 장 제조방법을 이어온 14가정의 장을 소환하는데 이번 호에는 화산면 송평리에서 전통 장을 만드는 정청자(84)씨를 소개한다.
화산면 송평리에서 전통방식대로 장을 만드는 정청자씨는 어른들에게 배워 60년 넘게 장을 담가왔다. 완도 노화도 이포리가 고향인 정씨는 친정어머니를 도우며 음식을 배웠고, 22살에 소안면 횡간도로 시집가 시어머니에게 배웠다.
정청자씨는 “집안이 안 좋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장에 뭐가 껴. 이것도 정성이여. 짚 깔고 방에 불 때서 자꾸 뒤집어줘야 해”라며 장 만드는 비법을 말한다.
완도댁이 화산 송평으로 이사 온 건 지금으로부터 45년 전이다. 지금껏 사용하는 장독도 완도에서 함께 이사온 장독이다. 2남4녀 자식들을 건사하기 위해 김 양식을 했고, 동네 남의 집 일도 많이 했다.
60년을 장을 담가왔으니, 장독에는 거뭇한 씨간장과 장소금이 그 세월을 말하고 있다.
정청자씨는 전통방식 그대로 장을 담그며 10월에 메주를 만든다. 콩은 마을에서 20kg 한 가마를 사서 삶아 방안에 볏짚을 깔고 띄우는데, 하얗게 옷을 입으면 제대로 띄워진 것이다. 메주는 볏짚을 엮어서 처마 밑에 매달아 장을 담그기 전까지 말린다.
정씨는 보통 음력 정월 초닷새에 장을 담근다. 옛날 어르신들이 하던 방식대로 달력을 보고 말날에 꼭 날을 받는다. 메주, 숯, 대추, 깨, 고추, 소금, 물을 넣어서 장을 담그며, 전통방식대로 장독대에 달걀을 띄워서 염도를 맞춘다.
약 30일 있다가 장을 가르는데 간장은 끓여서 일부는 씨간장에 붓고, 일부는 끓여서 맑은 장을 그대로 사용한다. 맑은 장은 해를 받으면 거뭇해져 병에 담아 부엌 찬장에 보관하고, 주로 미역국을 끓일 때 사용한다. 맑은 장을 써야 국이 맑아 보기 좋기 때문에, 일반 집장과 맑은 장을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다.
정씨의 된장은 유난히 색이 노랗고 예쁜 것이 특징이다. 장에서 건져둔 메주에 생콩을 삶아 절구에 찧어서 메주 콩물과 함께 넣는다. 이때 생콩을 식감이 살아있을 정도로 적당히 찧어서 넣는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 빻은 고추씨, 소금, 간장 등을 넣고 간을 맞춰서 항아리에 따독따독 담는다. 이렇게 익은 된장은 맛이 깔끔하고 노랗게 색이 예쁘다.
정씨는 된장으로 된장국을 끓이거나 나물을 무쳐 먹는데, 조림에도 된장을 넣는다. 집장은 고사리나물을 볶을 때나 장아찌를 만들 때 주로 쓴다. 간장과 매실, 된장을 섞어서 되직하게 만들어 깻잎과 켜켜이 쌓아 만드는 깻잎 장아찌도 정씨의 별미 음식이다.
엄마의 장은 내리사랑이다. 2남4녀 자식들뿐만 아니라 손주, 증손주에게도 장과 음식이 전달된다. 옆마을에 사는 큰딸 김철미(59)씨도 엄마를 닮아 음식을 잘하지만, 아직까지는 엄마의 손맛을 따라갈 순 없다.
또 정씨의 별미 중 하나는 직접 재를 만들어 작은 항아리에 길러 먹는 숙주와 콩나물이다. 댓잎을 올려두면 나물이 밀면서 올라오는데 5일 정도면 먹을 만큼 자란다. 명절 때나 가족들이 한껏 모일 때면 항아리에 길러 먹는데, 이 맛과 향이 남다르다.
정씨는 옛날 그대로 여전히 전통방식을 고수하며 살고 있다. 오래 걸려도 제 손으로 만들어 자식과 이웃 주민들에게 장을 나눈다. 정씨는 나이가 들어 앞으로 얼마나 장을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힘이 닿는 데까지는 전통을 이어나갈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