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지오탐사 과거와 미래를 잇는 리추얼

2024-11-05     윤지선/땅끝아해 해남탐조모임새봄
                           윤지선/땅끝아해 해남탐조모임새봄

 

 여낭터 가는 길 어란진 지역주민들의 숨인 비경인 목넘해변. 이 작은 해변에 지질학자 박정웅 선생님과 작은 혁신학교 아이들이 땅끝해안지오탐사에 나섰다. 오랜 세월 파도의 차별침식으로 깎여나간 벤치 같은 작은 해식와 노치 곁에 자유로이 앉은 아이들. 지금 아이들의 발아래로는 벌개미취 쑥부쟁이가 연보라빛으로 흔들리고, 올해 벼멸구 방제로 보기 드물었던 마지막 가을형 나비들이 꽃과 미네랄 짠내에 취한 듯 절벽 위로 여러 빛깔 날개를 나부끼며 날아다닌다. 
빼곡한 김양식 만호해역을 앞에 둔 어란진의 노른자 양식 터인 이곳은 가끔 쉬는 날이면 외국인 노동자 젊은이들과 지역 주민들만의 편안하고 아늑한 쉼터이기도 하다. 지난 여름 나도 이곳 지역주민인 땅끝아해 아이들과 처음 풀색꽃해변말미잘에 손가락을 쏙 닿아보기도 하고 유난히 크고 많은 갯강구떼의 빠른 움직임과 세상 느린 털군부의 슬로모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해남의 해안 곳곳은 사실 먼 옛날 마지막 살 곳을 찾아 호숫가로 모여든 공룡들이 평화로운 시간을 만끽하던 곳이다. 그러다 중생대 말 백악기 화산폭발이 이어지면서 눈송이처럼 내리던 화산쇄설물들이 켜켜이 쌓여 이 거대한 지층의 페이지를 만들었다. 분화 시기마다 마그마는 지하의 다양한 광물을 끌고 올라와 시루떡 안치듯 층층의 여러 빛깔 무지개떡 같은 라필리 응회암층을 이뤄 갈매섬까지 수 킬로미터에 걸쳐 펼쳐진다. 
학교로 돌아오는 길에 두모리패총에 들렀다. 마늘밭으로 쓰이는 패총 아랫길 아이들이 다니는 서정초가 있는 달마산 동굴부터 이곳까지 이어지는 선캄브리아 수정층을 보기 위해서였다. 화성처럼 뜨거워 아무 생명체도 살지 않던 초기 지구가 적당히 식어가며 첫생명을 불러모으던 지구의 첫 바다 첫 땅의 얕은 해안가에 쌓이던 모래층은 40억년 넘게 변성작용을 일으켜 규암과 수정암맥의 마블링이 되어 멋진 그림을 그리며 드러나 있다. 
이런 아름다운 해변은 이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해남 대부분의 해안절벽마다 이러한 지질학적 생태학적 페이지들이 이곳이 얼마나 아름답고 가치있는 곳인지 들려주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흔한 돌무더기 절벽이고 귀찮고 흔한 동식물로 여겨질지 모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미 멸종위기종에 이름을 올렸거나 올릴 예정인 귀한 생명들의 삶터를 엿볼 수 있다.  
이 아름다운 한 장 한 장의 지층 페이지는 아이들에게 46억년 지구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거대한 야외 교과서나 다름없다. 아직 해남을 공부하는 중인 귀촌인으로서 부족하나마 서정초 아이들과 해남자연탐사를 하면서 이렇게 지질학적 페이지를 읽게 되어 참 소중한 시간이었다. 
해남 땅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감탄하며 계속 배우고 싶은 이들은 이날의 나와 아이들만이 아니다. 해남의 서쪽 눙눙길과 동쪽 남창의 청년들은 해남의 자연에서 받은 영감으로 예술작품 전시와 영화를 만들었다. 에루화헌에서는 전국 각지의 젊은이들이 예술과 자연의 새로운 리추얼 방식을 배우고 나누는 새들의노래마을 대동제가 열리고 있다. 젊은이들이 해남 자연의 이러한 곳곳에 모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자연과 역사를 공부하고 함께 호흡하고 있는 현장이 지금 해남 곳곳에 펼쳐지고 있다. 
지질학자가 읽어주는 거대한 자연학습장이자 거대한 지질학적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읽어가며 배울 때마다 또 한번의 기후변화 속에 있는 하나의 종으로서 멸종저항을 실천하는 행동과 거대한 생명의 이어짐에 찬란한 멸종조차 깊이 감사한 마음이 든다. 불안이 큰 안도감으로 바뀌며 깊이 공부하는 땅끝 리추얼 현장들이 땅의 끝이자 시작으로 당신을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