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뿌리깊은 해남이야기 70 | 초의가 만난 사람들 ③추사의 아버지 김노경

2024-11-18     글,그림=김마루(향우,웹툰작가)

 

 일지암의 샘물 이야기가 <동다송>에 나온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초의가 유천(乳泉)이라고 일컬었던 이 샘물은 <동다송> 열 한번째 시에 실려있다. “나에게 좋은 샘물이 있으니 수벽ㆍ백수탕을 끓여서, 어떻게 남산(한양)으로 가져가 해옹(홍현주)에게 올릴까.” 아유유천(我有乳泉) 파성수벽백수탕(把成秀碧百壽湯) 하이지귀목멱산전(何而持歸木覓山前) 헌해옹(獻海翁). 
이 시의 해설문에 낯선 이름이 등장한다. “근래에 유당대야(酉堂大爺)께서 두륜산의 남녘을 지나다가 자우산방(일지암의 다른 이름)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그 샘물을 맛보시더니 맛이 수락보다 좋다고 하시더라.” 근유당대야(近酉堂大爺) 남과두륜(南過頭輪) 일숙자우산방(一宿紫芋山房) 상기천왈(嘗其泉曰) 미승수락(味勝酥酪). 
일지암을 찾아와서 하룻밤을 묵었다는 사람. 그는 추사 김정희의 아버지 유당(酉堂) 김노경이었다. 그는 당시 이조판서였다. 정2품 고위관리가 우슬재를 넘어오자 해남은 발칵 뒤집혔다. 개천에 나타난 용이 일지암으로 가는 길을 물었을 때는 모두 뒤로 자빠졌다. 그가 초의를 찾아온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김봉호 선생은 실명소설 <만나고싶다 그 사람을>에서 이렇게 말한다. 
“도대체 내 아들(정희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놈이 어떤 녀석인지 내가 그를 만나봐야겠다. 내 눈으로 확인할 수밖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아들이 스님에게 푹 빠진 것이 걱정이 된 김노경이 초의를 직접 만나러 온 것이다. 동헌에서 유숙하기를 권하는 현감의 간청을 물리치고 김노경은 일지암에서 초의와 묵기로 한다. 다음 날 가마에 올라 일지암을 빠져나가면서 김노경은 껄껄 웃는다. “과연 내 자식이야. 이만한 인품이니 정희가 빠질 수밖에….” 
김봉호 선생이 소설의 형식을 빌어서 재현한 두 사람의 만남이 감동적이다. 김노경은 9년 뒤 다시 일지암을 방문한다. 완도 고금도에 유배됐다가 풀려나서 한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김노경도 초의에게 푹 빠진 것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이때 김노경이 일지암의 샘물을 두고 지은 시가 있다. “무진장 흐르는 저 샘물은, 스님들을 고루 보살피려 함인가. 모두 표주박을 가지고 와서, 오롯한 달을 하나씩 안고 가누나.” 무진산하천(無盡山下泉) 보공산중려(普供山中侶) 각지일표래(各持一瓢來)총득전월거(總得全月去). 
김봉호 선생의 소설 <만나고싶다 그 사람을>에 실려있는 시다. 국회의원을 지낸 쌀봉호의 이야기가 아니다. 세칭 보리봉호 선생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