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뿌리깊은 해남이야기 72 | 초의가 만난 사람들 ⑤강화도 조약의 전권대사 신헌

2024-12-02     글,그림=김마루/향우, 웹툰작가

 

 신헌(신관호)은 1876년에 일본과 맺은 강화도 조약과 1882년에 미국과 맺은 조미수호조약에서 조선측 전권대사였던 사람이다. 신헌을 초의와 이어 준 사람은 추사 김정희였다. 신헌은 추사의 제자. 초의는 추사의 동갑나기 친구였다. 신헌은 초의보다 25세 아래였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보았다. 신헌이 1843년에 전라우수사를 자원해 해남 우수영으로 내려온 것은 스승때문이었다. 제주도에 유배된 스승을 가까이에서 보살피고 싶었던 것이다. 어느 날 초의가 말한다. “대광명전을 지어가꼬 부처님께 바치먼 으짜까요. 걱서 날마다 기도합시다. 추사를 하루빨리 풀어주시라고.” 초의의 말에 신헌과 소치 허련이 반색한다. “으띃게 그라고 좋은 생각을 했당가요? 우리도 건축비를 보태고잪소.” 대둔사 대광명전은 우정과 스승을 사모하는 마음 위에 세워진 전각인 셈이다. 
신헌은 일지암의 초의를 자주 찾았다. 추사가 제주에서 9년을 보내는 동안, 다섯번이나 추사를 찾아갔던 초의였으니 신헌도 스승의 소식이 궁금할 때는 일지암으로 달려갔으리라. 신헌과 초의의 우정도 해남의 황토고구마 만큼이나 달달했다. 신헌은 1849년부터 1854년까지 해남의 녹도에서 귀양살이를 한적이 있는데 초의는 두 번이나 녹도로 들어가서 신헌의 까칠한 뺨을 쓸어준다. 또 있다. 신헌이 유배에서 풀렸을 때에는 한양까지 달려가 회포를 풀어준다. “내게 두터이 대하여 끝내 (나를)버리지 않았으니 또한 감사할 만하다.” 기후어여(其厚於余) 이종불유(而終不遺) 우가감야(又可感也). 신헌도 초의의 따뜻한 정을 마음에 새긴 것을 알겠다.“스님은 시문에 뛰어났으니 대개 다산 정약용 공에게서 받은 것이다. 또 서화에도 뛰어났다. 사대부와 더불어 노닐기를 기뻐하였다.” 사장어시문(師長於詩文) 개수어다산공(盖受於茶山公)우공어서화(又工於書畵) 희여사대부유(喜與士大夫遊). 신헌이 초의를 위해서 쓴 글이다.
“공즉시색(空卽是色) 깊은 이치 불경에서 깨닫고는, 산꼭대기 높은 곳에 띠집지어 옮겨 사네” 패경심오공중색(貝徑深悟空中色) 모옥이거최상두(茅屋移居最上頭). 일지암을 돌아보는 글이다. 
신헌은 초의에 대한 글을 가장 많이 남긴 사람이기도 하다. 신헌. 빼어난 무신. 조선의 전권대사로 활약한 외교관. <민보집설>, <융서촬요>등의 병서를 저술하고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제작을 후원해 준 인물. 여기에 하나 더하고 싶다. “추사 김정희의 진실한 제자. 해남 대둔사의 일지암을 오가면서 초의선사와 지란지교를 나눈 행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