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소멸 위기 신호탄 ‘식품사막화’

해남 470개 마을 식료품점 없어 농촌마을 소멸·인간 존엄성 문제

2025-01-24     김유성 기자
농촌마을에 점방과 만물트럭이 사라지면서 신선한 먹거리를 구할 수 없는 식품사막화가 주민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북평면 남창장을 보러온 주민들)

 

 일본이 먼저 겪었다. 우리와 비슷한 환경의 일본은 이미 10년 전부터 극심한 식품 사막화를 경험했다. 
2040년 일본 지자체 1,727곳 중 896곳이 소멸할 것이라는 발표도 나왔다. 또 일본 총무성에서는 2015년부터 4년간 164개 마을이 사라졌고 가까운 장래에 농촌마을 3,000곳 이상이 사라질 것으로 분석했다. 
이러한 위기감이 점화되자 ‘지방창생’ 전략을 발표하고 막대한 재정을 투입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정책이 실패로 돌아갔다. 오히려 오이타현 히타시 나카즈에무라(村) 미야하라 마을은 존립 포기를 선언하며 ‘마을을 품위 있게 사라지게 하자’는 운동을 펼쳤다. 
이러한 일본에 인구감소와 초고령화로 가장 먼저 찾아온 위기가 바로 식품사막화 현상이었다. 
그러나 식품사막화는 더 이상 이웃나라 얘기가 아니다. 콩나물과 두부조차 사먹을 수 없는 마을이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 해남의 현실이다. 
몇 천원 짜리 물건 하나 사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거나 택시를 불러야 하는 마을 주민들, 더 문제는 몸이 불편해 버스를 오르내릴 수 없는 노인들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장보기가 힘들다는 개념을 넘어, 마을 소멸이 임박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따라서 식품사막화 문제는 해남의 존립을 위해 꼭 풀어야 할 숙제이다. 해남군은 논밭과 바다를 품고 있는 농어촌 지역임에도, 식품사막화의 위협이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해남군 행정리 515개 마을 중 약 470개 마을이 일정 반경 내에 식료품점이 없어 건강한 식품에 접근하기 어려운 상태다. 특히 고령자가 다수를 차지하는 농촌마을은 더욱 취약하다. 
우유, 계란, 과일 같은 기본 신선식품을 구하려면 최소 반나절을 소비해야 하며, 이는 주민들의 식생활을 점점 더 가공식품과 인스턴트 음식에 의존하도록 몰아가고 있다.
다른 지자체들도 이미 식품사막화 문제를 인식하고 다양한 해결책을 모색 중이다. 전북에서는 로컬푸드 직매장 확대와 이동형 마트 도입을 통해 농민과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고, 고령 인구가 많은 지역에 신선식품을 직접 배달하는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정부 차원의 노력도 이어지고 있는데, 냉장 이동 차량을 활용한 ‘내 집 앞 이동장터’가 그 사례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업이 아직 효과가 입증되지 않아 지켜보는 단계다. 
일찍이 식품사막화를 경험한 일본도 마을의 소형 상점이 사라지면서 주민들이 생필품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쇼핑 난민’ 현상이 일어났다. 이에 일본 지방정부는 이동 판매 차량이나 배달 서비스를 도입했고 생필품 등을 실은 편의점 트럭이 마을을 찾는 모습은 일본의 지방 소도시에서 흔한 풍경이 됐다.
식품 사막화를 해결하기에 행정의 힘으론 어렵다. 민관이 함께 고민해야 하는 문제다. 
또 해남에서 식품사막화를 극복하기 위한 움직임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 ‘음식돌봄 공동체’ 활동이 대표적인 예다. 지난해에는 35개 단체가 각 500만원의 사업 추진비를 지원받아 이미용 봉사, 음식 배달 등의 사업을 진행했으며, 올해에는 40개 단체가 참여할 예정이다. 
이러한 정책은 식품사막화에 처한 노년층의 소비 선택권까지 보장하는 단계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해당 기본적인 영양권을 보장하는 데 기여하는 바가 크다. 이미 군민들 스스로 식품사막화에 대한 보이지 않는 위협을 감지한 결과다. 
이러한 움직임을 더욱 체계적으로 확장한다면 식품사막화를 지연시킬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타 지자체의 움직임과 민간 영역의 역할에 대해 검토해볼 문제다.
식품사막화 문제는 단순히 주민들의 생활의 불편을 넘어 지역사회 전체의 건강과 미래를 좌우할 중요한 과제다. 주민들의 자발적 노력과 행정이 함께 머리를 맞댄다면,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연장할 수 있다. 
미래 해남의 모습도 중요하지만 현재를 살고 있는 군민들의 행복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지금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