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뿌리깊은 해남이야기 77 | 그대 땅끝에 오시려거든 김경윤 시인을 만나세요
꽃이나 달을 그려낸 시는 많다. 그런데 여기 밑창이 터진 헌 신발을 노래한 시가 있다. 김경윤 시인의 <신발에 대한 경배>가 그것이다.
“신발장 위에 늙은 신발들이 누워 있다/탁발승처럼 세상 곳곳을 찾아다니느라/창이 닳고 코가 터진 신발들은 나의 부처다/세상의 낮고 누추한 바닥을 오체투지로 걸어온/저 신발들의 행장(行狀)을 생각하며, 나는/촛불도 향도 없는 신발의 제단 앞에서/아침저녁으로 신발에게 경배한다/신발이 끌고 다닌 수많은 길과/그 길 위에 새겼을 신발의 자취들은/내가 평생 읽어야 할 경전이다/나를 가르친 저 낡은 신발들이 바로/갈라진 어머니의 발바닥이고/주름진 아버지의 손바닥이다/이 세상에 와서 한평생을/누군가의 바닥으로 살아온 신발들/그 거룩한 생애에 경배하는/나는 신발의 행자(行者)다.”
신발장 위에 놓여 있는 늙은 신발들을 보고 갈라진 어머니의 발바닥을 떠올리고 오체투지로 걸어온 부처를 떠올리는 시인이라니. 이 시를 처음 만났을 때 필자는 잠시 숨을 멈추었던 기억이 있다. “나는 너희들의 몽당연필이 되어도 좋다/침 발라 쓰다가 쓰다가 쓸 수 없을 때 버려도 좋을/한 자루 몽당연필로 살아도 좋다/너희들이 살아갈 세상이 시커먼 흑연빛이 아니라/5월의 푸른 하늘같이만 될 수 있다면/나는 너희들의 몽당연필로 살아도 좋다” <몽당연필의 꿈>의 전문이다. 교사로 살았던 시인의 다짐을 담고있는 시다.
해남 땅끝을 노래한 시도 있다. “그대 땅끝에 오시려거든/일상의 남루 죄다 벗어버리고/빈 몸 빈 마음으로 오시게나/행여 시간에 쫒기더라도 지름길일랑 찾지 말고/그저 서해로 기우는 저문 해를 이정표 삼아/산다랑치 논에 소를 몰 듯 그렇게 고삐를 늦추고 오시게나”로 이어지는 시의 제목은 <그대 땅끝에 오시려거든>이다. 지난해 10월에 문학들에서 펴낸 김경윤 시인의 시화집 제목도 <그대 땅끝에 오시려거든>이다. 이 시화집은 저자의 시 57편에 해남의 풍광을 담은 고금렬, 김총수, 민경, 박흥남의 컬러사진 73컷을 엮었다. 올 봄에는 이 시화집을 들고 내 고향 해남땅끝을 찾아가야 겠다.시인은 말한다. “시의 밑바닥에는 인생이 있어야 한다.”는 이성복 시인의 말에 공감하고 있다. 누구나 인생을 깊게 들여다보면 흰 옥양목 천에 묻은 황톳물처럼 슬픔이 배어 있다. 그 황톳물이 시가 아니겠는가.(광주의 문학정신과 그 뿌리를 찾아서, 문학들,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