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뿌리깊은 해남이야기 78 | ‘너를 기다리는 동안’의 시인 황지우
황지우 시인은 많은 시를 썼다. 그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시는 ‘너를 기다리는 동안’일 것이다.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이 시는 활짝 열려있다. 기다림의 대상은 오롯이 독자들의 몫이다. 이 시가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다.
‘늙어가는 아내에게’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가 그렇게 잘 늙은 다음/ 힘 없는 소리로, 임자, 우리 괜찮았지?/ 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그때나 가서/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때나 가서/ 할 수 있는 말일거야’ 가슴으로 전해지는 시. 소리 없이 등을 적시는 봄비같은 구절들이 좋다.
한편,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라든가, ‘묵념’ 같은 시들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시에는 1980년 5월이 남긴 분노와 신음소리가 담겨있다.
시인이 쓴 김대중 대통령 추모시도 광주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당신은, 우리 젊은 날, 그 모질고 깜깜했던 얼어붙은 시대를 건너오는 목소리였어요.(...) 하마터면 비굴해질 뻔했던 우리를 다시 세우고, 우리가 헤맬 때 꼭 어떤 곳을 가리켰던 그 목소리에는 때로는 전율과 눈물이 때로는 얼마간의 피가 섞여 있었지요.’
이렇듯, 시인의 작품들은 스펙트럼이 참 넓다. 시대의 증인. 민중의 깐부. 나는 시인을 이렇게 부르고 싶다.